[대선 재투표 현장 표정]우크라, 親서방 정권 탄생하나

  • 입력 2004년 12월 26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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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부정선거 항의 시위와 야당 후보에 대한 독살기도설 등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재투표가 26일 실시됐다.

투표 직전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 야당 지도자인 빅토르 유셴코 후보가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후 처음으로 친(親)서방 정권 탄생이 임박했다.

국제적인 관심을 반영하듯 1만2000여 명의 대규모 외국인 선거감시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투표는 전국 225개 투표구에서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돼 오후 8시(한국시간 27일 오전 3시)에 끝났다. 총유권자수는 3600만여 명. 투표율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

▽수도 키예프는 오렌지색 물결=수도 키예프 중심가의 독립광장에는 투표일까지도 유셴코 후보를 상징하는 오렌지색 물결이 넘쳤다. 영하의 날씨에도 오렌지색 목도리와 모자를 쓴 수천 명의 지지자들은 100여 개의 텐트를 치고 밤을 새우며 광장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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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셴코 후보 진영은 “승리를 마지막까지 지키자”며 결집을 호소했고 투표를 마친 지지자들은 다시 독립광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모습이었다.

지난달 22일 부정선거 항의시위가 시작될 때부터 매일 광장을 지켰다는 키예프 국립대 어문학부 4학년생 루슬란 셰프첸코 씨(22)는 “(유셴코 후보의) 승리를 확신한다”며 “저항의 장소였던 독립광장은 승리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택시운전사 블라디미르 크라프첸코 씨(61)는 “옛 소련이 해체된 것으로도 부족해 나라가 또 두 동강 나게 생겼다”고 우려했다. 러시아계로 남부 오데사 출신인 그는 “나는 우크라이나어도 서툰데 러시아어 공용화를 반대하는 유셴코 후보가 당선되면 고향으로 돌아갈 작정”이라고 말했다.

▽평화적 정권 교체 기대=이번 재투표 결과는 27일 오전(한국시간 27일 오후)에 윤곽이 드러날 예정이지만 우크라이나 사회모니터링 센터가 투표 직전 실시한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 유셴코 후보가 51%의 지지율로 여당 후보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총리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셴코 “승리 100% 확신”

유셴코 후보와 야누코비치 후보의 실제 득표율 차이는 선거 후 정국의 향방을 결정지을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유셴코 후보가 근소한 표차로 승리하면 야누코비치 후보의 지지 기반인 동남부 지역 유권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 또다시 정국 혼란을 빚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두 후보가 선거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공언했고 야누코비치 후보를 지원해온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고 새 대통령과 협력하겠다고 약속,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재투표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키예프의 분위기는 이미 빅토르 유셴코 후보의 승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26일 오전(현지 시간) 키예프 중심가 독립광장 인근의 노동조합연맹 청사에 설치된 제1투표소. 11시에 유셴코 후보가 이곳에서 투표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모여든 400여 명의 내외신 기자들로 붐볐다.

경찰은 주변 도로를 차단하는 등 ‘대통령급’ 경호를 펼쳤다. 20여 분 늦게 유셴코 후보가 도착하자 기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소동이 벌어졌다.

한때 영화배우 못잖은 준수한 외모를 자랑하던 유셴코 후보의 얼굴은 의문의 다이옥신 중독 탓에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해 있었지만 당당하고 힘찬 태도는 여전했다. 오렌지색 목도리를 두른 유셴코 후보에 이어 부인 예카테리나 여사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렌지색으로 옷을 맞춰 입은 5명의 자녀가 따라 들어왔다.

미국 시민으로 아직 투표권이 없는 예카테리나 여사는 유셴코 후보가 투표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투표를 마친 후 늦둥이 아들 타라사 군(5)을 안은 유셴코 후보를 기자들이 둘러쌌다.

당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유셴코 후보는 “내가 100% 이길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누구에게 투표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우리의 미래를 위해, 우크라이나의 미래에 한 표를 던졌다”고 대답했다. 그는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 오늘은 축제의 날이 될 것”이라고 말한 후 투표소를 떠났다.

그가 거리로 나오자 50여 명의 지지자들이 일제히 ‘유셴코’를 외쳤고 지나가던 차들은 경적을 울려 그의 대중적 인기를 보여줬다.

반면 여당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후보와 레오니트 쿠치마 대통령의 투표 장면은 언론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다. 선거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권력은 이미 민심을 등에 업은 유셴코 후보에게 옮겨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키예프〓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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