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지난 4년…“강한 미국” 비타협적 행보 세계 눈총도

  • 입력 2004년 11월 3일 18시 27분


2001년 9·11테러 직후. 잠바에 안전모를 쓰고 뉴욕 세계무역센터 참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즉흥 연설을 시작했다.

소음으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자 주위를 에워쌌던 소방관들과 현장 관계자들 중 한 명이 외쳤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요!”

부시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아메리카(미국)는 바로 당신과 이곳 희생자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어눌한 화법으로 자주 구설수에 오르는 부시 대통령이지만 그의 인간미 넘치는 이 같은 화법은 테러의 공포로 얼어붙은 미 국민의 가슴을 녹여주었다고 당시 언론들은 전했다. 보수 진보의 차이가 없었다.

접전에 접전을 거듭했던 미국 대선. 미 국민은 결국 테러의 불안 속에서 ‘안보 대통령’을 자임하며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시켜 온 부시 대통령의 손을 일단 들어줬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4년간 재임 성과를 이렇게 요약한 적이 있다. 9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였다.

“9·11테러 이후 미 국민 앞에는 올라가야 할 언덕들이 가로놓여 있었으나 우리는 그 언덕들을 올라갈 힘을 얻었다. 우리는 힘든 여행을 해 왔기에 저 아래 계곡들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지도력으로 9·11테러를 이겨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4년 재임기간에 그는 정치적 위험 부담과 국내외의 비판이 있더라도 자신의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국제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도 이라크에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 대표적인 예. ‘반대 여론 속에서도 신념과 확신에 따라 행동한다’는 그의 정치 노선은 미국의 독선으로 비치면서 전 세계적 반미정서에 불을 지폈지만 미국의 보수 진영을 하나로 통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성애 결혼, 낙태, 줄기세포 연구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 있어서도 그는 기독교적 윤리관을 내세우며 한결같이 반대 입장을 취했고, 보수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달 치러진 아프가니스탄 대선이 별다른 유혈 충돌 없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도 민주주의를 세계에 전파한다는 부시 대통령의 명분과 노력이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비난과 비판도 많았다. 먼저 9·11테러 이후 ‘반(反)테러 애국법’이라는 국민감시시스템을 만들어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상당 부분 침해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이라크 공격의 빌미가 된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정보도 왜곡되거나 정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실추시켰다.

대북 강경정책만을 고수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한 채 한반도 긴장만을 고조시켰다는 비난도 있다.

부시 대통령의 4년은 ‘가장 비전 있는 지도자’와 ‘가장 소모적인 실패자’의 극과 극을 넘나든 기간이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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