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개혁파 총선 거부 선언…보수파 “강행”

  • 입력 2004년 2월 3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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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개혁파가 혁명수호위원회로 대표되는 보수 강경파에 맞서 ‘총선 거부’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로써 지난달 11일 혁명수호위원회가 이달 20일로 예정된 총선에 입후보한 8000여명 가운데 개혁성향 인사 4000여명의 후보 자격을 박탈하면서 촉발된 이란의 보-혁(保-革)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개혁파의 총선 거부=최대 개혁정당 ‘이슬람 이란참여전선’의 모하마드 레자 하타미 당수는 2일 기자회견에서 “총선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하타미 당수는 “우리 당은 압도적 표차로 총선 보이콧을 결정했다”며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실시될 것이라는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개탄했다. 하타미 당수는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의 동생.

개혁파 성향의 정부 각료들은 총선을 합법적으로 연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앞서 1일에는 개혁파 의원 124명이 혁명수호위원회에 맞서 사직서를 제출했다. 총 의석 290석 가운데 재적의원 3분의 2가 출석해야 의결정족수를 채울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집단 사퇴로 의회 기능은 사실상 마비됐다.

▽위기의 개혁파=그러나 혁명수호위원회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개혁파의 총선 불참으로 2000년 총선 때 개혁파에 빼앗긴 의회를 되찾을 호기로 보고 있다. 국민들은 보수파에 적대적이지만 이번 총선은 투표율도 사상 최저일 것으로 예상돼 보수파에 유리하다.

개혁파는 그동안 의사당 점거 연좌시위, 각료 집단사퇴 등으로 보수파에 맞서왔다. 그러나 ‘여론 몰이’의 성격을 띤 이들의 ‘이벤트’에 대해 국민들은 거의 무관심하다. 개혁 열망을 등에 업고 의회 의석 총 210석 가운데 190석을 개혁파가 차지했던 2000년 총선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15일자)에서 “한때 개혁파를 밀었던 이란 국민들은 개혁세력의 역량에 실망하면서 체념하고 있다”고 전했다. 개혁 진영은 경직된 이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수많은 입법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의회보다 상위기관인 혁명수호위원회의 거부로 무산됐다. 지난해 10월 조사에 따르면 의회가 비준한 총 295개 법안 가운데 111개안이 거부됐다.

개혁 진영 수장격인 하타미 대통령과 개혁파 인물들이 몇 년간 보수파에 맞서 ‘사퇴 공언’을 남발하고 단 한번도 이를 지키지 않은 것도 국민의 신뢰를 잃게 한 요인. 더구나 강경파 성향의 국영 TV가 여론까지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보수파 수장인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지난해 10월 21일 갑자기 자국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공개하겠다고 공언한 데 이어 보수파 인물을 담당자로 임명하고 약속을 충실하게 이행해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란의 최근 정치적 위기 상황을 크게 다루지 않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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