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프로젝트]<9>캄보디아 앙코르 유적 복원

입력 2003-06-26 18:49수정 2009-10-1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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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캄보디아의 밀림 속에서 앙코르와트를 발견한 프랑스 박물학자 앙리 무오는 그 규모에 놀라 “도대체 누가 저걸 만들었느냐”고 원주민들에게 물었다.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천상의 거인들이 아니라면 누가 저런 걸 만들었겠느냐”는 것이었다. 동남아 최대의 호수인 톤레사프 인근 도시 시엠리아프 바로 옆에 있는 앙코르 유적은 이방인뿐 아니라 원주민들에게도 신비스러운 것이었지만 무오가 발견할 당시에도 훼손돼 가고 있던 중이었다. 》

20일 찾아 본 앙코르 유적은 자연과 세월로 크게 훼손돼 있었다. 앙코르톰 바깥의 불교 사원인 프레야 칸과 타 프롬에는 거대한 무화과나무와 벵골 보리수가 마치 비단뱀이나 공룡의 발처럼 유적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최대 20도나 되는 일교차, 잦은 비도 공범이었다.

전쟁과 약탈도 훼손 이유다. 크메르 루주로 인한 오랜 내란, 캄보디아-베트남전쟁 당시에는 유적들로 포탄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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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은 1세기 이상 행해지다가 최근에야 잦아들었다. 약탈자 가운데는 프랑스 작가이자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도 있었다. 그는 이로 인해 재판까지 받았으며 그의 소설 ‘왕도의 길’에는 약탈 체험이 기록돼 있다.

앙코르톰 중심부의 바푸온 사원에서는 20일 프랑스 극동학교(EFEO) 소속의 재건축팀과 캄보디아 인부들의 복원 작업이 한창이었다. 미국 프랑스 일본 독일 중국 스위스 등 11개국의 앙코르 유적지 복원팀 중의 하나였다.

프랑스의 앙코르 유적 복원팀이 일하고 있는 바푸 온 사원 재건축 현장. 분해한 30만개의 돌들을 다시 끼워 맞추는 ‘세계 최대의 퍼즐’이 진행되는 곳이다.-시엠 리아프(캄보디아)=권기태기자

한때 캄보디아를 지배했던 프랑스는 60년대 초 구조상 허술한 이 사원을 완전 해체해 복구하는 ‘분해해체(anasylosis)’ 방식으로 복원키로 했다.

현장 지휘자인 건축가 파스칼 로예르는 “95년 이후 작업을 본격화했으며 그간 분해해낸 돌이 모두 30만개”라고 했다. 사원 주변의 숱한 돌들에는 원래 위치를 알려주는 작은 숫자들이 흰 페인트로 쓰여 있었다. 그는 “2006년 완성이 목표”라며 “세계 최대의 퍼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92년부터 쾰른 응용과학대학의 전문가팀 GACP(German Apsara Conservation Project)를 통해 앙코르와트의 개보수에 나섰으며 지금까지 180만마르크(약 36억원)를 지원했다.

앙코르와트에는 과거 앙코르 제국의 전쟁 무용담 등을 담은 800m 길이의 벽화가 있다. 전통 무희인 압사라의 부조상 1850여개도 있다. GACP는 이들 전부를 정밀 촬영하는 작업을 마쳤다.

GACP측은 “벽화의 경우 레일을 깔고 대형 조명 장치와 카메라를 이동해 촬영했다”며 “이렇게 촬영한 것들을 1장의 사진으로 만들어 연속성을 살렸다”고 밝혔다. 이 결과 2개의 기록이 기네스북에 올랐다. 단일 피사체에 대한 최장의 네거티브 필름(7×245cm), 최장의 인화사진(62×1.25m) 기록이다.

이들은 “광도 차이를 없애기 위해 밤에만 불을 밝히고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GACP는 1866년 스코틀랜드인 존 톰슨이 촬영한 벽화 사진들과 비교해 부식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분석했다. 압사라상들 중 360개가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고 판정했다.

그간 11개국이 앙코르 유적 복원에 나섰지만 찬사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팀은 복원 과정에 콘크리트를 쓰기도 했으며 원래 모습을 바꿔버린 테라스도 있어 비난이 쏟아졌다. 인도팀 역시 콘크리트를 썼으며 벽에 낀 이끼 청소 과정 등에서 부조들을 손상시키기도 했다.

각국 팀들은 서로 다른 ‘복원 철학’ 때문에 긴장 관계에 놓이기도 한다. 일본팀의 경우 크메르인의 원래 건축술을 사용하려고 노력하며 복원된 부분에 일체의 표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세계유적기금(WMF)의 작업팀은 옛것과 새것을 구별해놓아야 한다는 취지로 돌마다 작은 글씨로 ‘wmf’라고 쓴다고 한다.

각국 팀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업으로는 유적 복원기술 전수사업이 있다. 일본·독일팀은 프놈펜의 왕립 순수예술대학 학생들에게 고건축학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 20명의 캄보디아 건축가들이 ‘압사라의 로스 보라스(Apsara's Ros Borath)’라는 자체 재건축팀을 만들었다. 유네스코의 자문관인 클로드 자크는 “15년쯤 후에는 캄보디아인들이 앙코르 유적 재건축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앙코르톰에서 만난 캄보디아 건축가 문 라는 “이들 유적 전체의 복원에는 100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며 “그러나 많은 세계인이 우리를 돕고 있고, 우리는 결국 후대에 이 유적들을 무사히 물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시엠리아프(캄보디아)=권기태기자 kkt@donga.com

▼日복원팀 책임자 사토 "日정부 매년20억원 지원 친선도모"▼

앙코르 톰 내의 프라사트 수르 프라트 재건축 현장에 선 사토 야스하루.-시엠 리아프(캄보디아)=권기태기자

일본 건축가 사토 야스하루(佐藤康治·54)는 ‘앙코르 유적 복원을 위한 일본 정부팀(JSA)’의 현장 책임자다.

4월 말 부임한 그는 2005년 4월까지 앙코르 톰 내의 ‘프라사트 수르 프라트’라는 탑들과 앙코르 와트 내의 북쪽 도서관을 복구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그간 JSA는 세심한 복구 작업으로 현지의 호평을 받고 있다.

프라사트 수르 프라트는 ‘춤추는 밧줄 탑들’이라는 뜻으로 12개가 있다. JSA는 붕괴 위기의 탑 1개를 완전 분해해 재조립 중이며 다른 1개는 전면 보수, 나머지는 부분 보수 중이다. 현장에는 3000개 정도의 분해한 돌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가급적 앙코르 유적 건설 당시의 재료를 쓰려고 한다”며 “건축 지반공학 보존과학 암석학 등 각 방면 전문가들이 참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상근 건축가로 6명의 일본인과 10명의 캄보디아인, 현장 인부로 캄보디아인 100여명이 작업하고 있다.

사토씨에게 앙코르 건축의 미덕을 물어봤다. “자연, 특히 물과의 조화가 돋보입니다. 건기와 우기 때 배수와 저수를 잘 조절하기 위한 것이지요. 21세기 건축에도 가르침이 됩니다.”

JSA는 이미 99년 앙코르 톰 내 바이욘 사원의 북쪽 도서관을 복구했다. 일본 정부는 92년부터 연간 2억엔(약 20억원)씩을 지원해왔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캄보디아를 강점한 적이 있으나 경제적 지원 등을 통해 관계 개선에 애써왔으며 프놈펜에는 양국 친선의 다리도 있다.

사토씨는 와세다대 건축과를 졸업한 뒤 뉴욕에서 활동해오다 일본 정부의 대외 건설 지원 사업에 참여해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학교 건물을 지었다. 95∼98년에는 프놈펜의 왕립 순수예술대학의 강단에 섰다.

2005년 4월 이후 JSA의 계획을 묻자 그는 “아마 바이욘 사원 복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원은 54개 탑의 4면마다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 216개가 조각돼 있다. 그는 “이미 바이욘 사원 곳곳에 진동 계측기를 설치해놓아 탑들의 이상 움직임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앙코르 유적…7t돌기둥 1800개의 사원등 석조예술 극치▼

앙코르 제국은 790∼1432년 캄보디아를 지배했다. 앙코르 유적지는 제국의 수도로 크게 앙코르 와트(거대한 사원) 앙코르 톰(거대한 성)으로 나뉜다. 두 곳 안팎에는 290여개의 불교와 힌두교 사원이 있다. 이들은 갖가지 조각과 벽화 돌기둥 석조회랑으로 석조 문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세계 최대 단일 종교 건물인 앙코르 와트는 동서 1.5km, 남북 1.3km의 규모다. 돌기둥만 7t짜리 1800개, 중앙탑은 높이 63m다. 제국 최전성기의 수리야바르만 2세가 힌두교 신앙을 위해 1113∼1150년 매일 2만5000명을 투입해 세운 것이다.

앙코르 톰은 한 변이 3km 되는 성에 둘러싸인 정방형 도시로 자야바르만 7세가 세웠다. 이곳 중앙에는 그의 얼굴들이 조각된 탑으로 유명한 바이욘 사원(불교)을 비롯해 바푸온 사원(힌두교) 피미아나카스 사원(힌두교) 등이 있다.

불교를 국교로 삼은 그는 곳곳에 대형 석조물을 세웠으나 국력을 소진한 후 1218년 의문사한다. 앙코르 제국은 한때 동남아 대부분을 지배했으나 그의 죽음 이후 시암 왕국(타이)으로부터 공격받았으며 결국 현재의 수도 프놈펜으로 천도했다가 15세기 중반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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