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프로젝트]<8>'코모도 드래건'-인간 共生길 찾아라

  • 입력 2003년 6월 19일 19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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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코모도 드래건. 날름거리는 혀는 냄새를 맡기 위한 것이다.-사진제공 코모도국립공원관리사무소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코모도 드래건. 날름거리는 혀는 냄새를 맡기 위한 것이다.-사진제공 코모도국립공원관리사무소
1911년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보고르식물원에 근무했던 네덜란드 사람 반 스테인은 1억3000만년 전 쥐라기에 형성된 인도네시아 동쪽 코모도섬을 여행하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악어만큼 큰 도마뱀 무리가 멧돼지를 통째로 삼키고 자기 몸의 2, 3배에 달하는 물소도 떼 지어 해치우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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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대 이 지역을 여행한 알프레드 왈라스는 인도네시아 1만7000여개의 섬 중 발리섬을 경계로 서쪽에는 아시아 생물군이, 동쪽에는 호주 대륙 생태계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학계에 보고했다. 호주의 화석층에서만 발견되는 이 왕도마뱀이 코모도섬 일대에서 살아남은 것은 호랑이 등 더욱 빠르고 강력한 이빨을 가진 아시아계 맹수들이 바다를 건너지 못한 덕택이었다. 반 스테인은 이 도마뱀을 ‘코모도 드래건(komodo dragon·코모도왕도마뱀)’이라고 불렀다.

92년 뒤인 이달 13일 기자는 반 스테인이 탐험했던 코모도섬을 찾았다. 그러나 뱃길부터 만만치 않았다. 인도네시아 열도 동쪽 플로레스섬의 라부안바조항을 떠난 15인승 스피드 보트는 2m가 넘는 파도에 형편없이 떠밀리다 1시간여 만에 코모도섬 로리앙 포구에 닻을 내렸다. 선착장에 올라서자 코모도 드래건의 나무목각과 함께 코모도 국립공원 안내표지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런 오지에 서식하는 코모도 드래건이 멸종위기에 빠져 있다니…. 코모도 드래건의 ‘천적(天敵)’은 바로 사람들이었다. 코모도 국립공원의 소사(小史)는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인도네시아는 지구상 육지면적의 고작 1.3%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 세계 생물종의 17%가 서식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 해역은 적도의 따가운 햇빛을 받으며 산호가 넓게 퍼져 있는 데다 인도양과 태평양이 맞부딪쳐 만들어내는 거친 조류까지 오가는 덕에 전 세계 어족자원의 25%가 발견된다.

코모도섬과 바로 옆 링카섬 길리모타섬 및 인근 해역이 인도네시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1980년. 육지(603km²)와 바다를 합쳐 거의 제주도 면적에 맞먹는 1817km²의 면적이 공원에 포함됐다. 유네스코가 이 공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1986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공원 지정과 함께 코모도 드래건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인 사슴(루사)과 멧돼지의 포획을 엄격히 금지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사냥으로 생계를 꾸려온 3100여명의 주민들이 당장 굶게 됐다. 지금도 이 지역 주민의 1인당 소득은 연 120만루피아(약 150달러)로 인도네시아 최빈지역에 속한다.

주민들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바다로 눈을 돌렸다. 농어 돔 등 횟감과 각종 열대어 등이 홍콩시장으로 마리당 수십달러에 팔려나갔다. 돈 맛을 알게 된 주민들은 아예 수중에 폭약을 터뜨리거나 독약을 뿌리는 등 불법 어로작업을 해왔다. 코모도 드래건의 멸종위기가 여전한 터에 ‘해양자원의 보고’까지 망가지게 된 셈이다.

주민들이 불법 밀렵과 어로를 계속하자 이번에는 국제환경보호단체들이 나섰다. 국립공원 지정 15년 후의 일이었다. 여기에 고무된 인도네시아 정부는 해양자원의 보호에 남다른 노하우를 가진 ‘TNC(The Nature Conservancy)’에 해역 관리를, 코모도 드래건의 보호와 체계적인 연구는 세계 최고의 동물전문가들이 포진한 미국 샌디에이고동물원재단에 맡겼다.

현재 샌디에이고동물원재단은 코모도 드래건을 한 마리씩 포획해 인식표를 붙이는 한편 그들의 모든 행태를 추적해 자료를 차곡차곡 모아놓고 있다. 어느 곳에 알을 낳아야 부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지, 갓 태어난 새끼 코모도 드래건을 어미 코모도 드래건의 포식으로부터 지키는 방법 등 코모도 드래곤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해양자원을 맡은 TNC의 활동은 이 일대 어종만큼이나 다양하다. 생태계 보전과 인간의 생존이 가장 첨예하게 부닥친 곳이 공원 내 바다였기 때문이다. TNC는 국립공원 관리부처인 인도네시아 산림부와 함께 ‘25년 공원 관리계획’을 세워 2000년부터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 계획에 따라 관광금지구역, 어로금지구역 등이 지정되는 한편 △값나가는 물고기를 양식하고 △다양한 물고기 가공기법을 가르치거나 △(산호초에 닻을 던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공용 상설닻을 바다 속에 박아 넣는 작업 등이 코모도 해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소요자금은 미국 패커드재단, 퍼킨스재단, 유네스코, 일본의 경단련 자연보호재단, 세키스이(績水)화학, 정부개발원조(ODA) 등이 댄다. 요원만 70명이 상주하고 있다.

이런 프로젝트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원주민들과의 마찰을 빚었다.

“도마뱀이냐, 인간(주민)이냐. 아니면 외국 관광객이냐. 우선순위가 한꺼번에 충돌했습니다.”

코모도 국립공원 내 코모도섬 담당인 헨드리쿠스 시가는 “아직도 주민들은 ‘누구를 위한 국립공원이냐’라는 불만을 느끼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멸종위기에 놓인 ‘흉측한’ 동물을 보호하는 일은 하루하루 생계를 꾸리기에 벅찬 주민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고상한’ 작업이었다.

플로레스섬의 양식 시험장에서 만난 게데 위아드니파 TNC 코모도 현장사무소 부소장은 “주민들의 생계가 보장돼야 생태계가 보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해법은 관광수입. 그러나 연초 발리에서 외국 관광객들을 살육한 대규모 테러는 코모도 생태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쳤다. 매달 3000명의 서방관광객이 몰려들던 국립공원의 입장료 수입이 뚝 떨어진 것. 4만루피아(약 6000원)를 내고 입장한 기자에게 매표소 직원은 6월 들어 271번째 입장객이라고 말해줬다. 그나마 입장수입 중 15%만 국립공원에 남겨지고 나머지 대부분은 중앙·지방정부에 분배되는 구조다.

유네스코와 유엔환경계획 TNC 등은 지난해 12월 ‘환경 친화적인 관광수입 증대방안’을 작성해 인도네시아 정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관광수입을 늘리기 위해 대대적인 설비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골자다.


코모도(인도네시아)=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바다양식 기술 전수 주민 불법어로 막아"▼

“오지라니요, 더 이상 아름다운 바다는 없습니다.”

코모도 국립공원의 관문인 라부안바조항에서 만난 트레보 마이어(사진). 공원 내 해양자원 보호를 맡은 자연보호단체 TNC에 지난해 여름 합류한 마이어씨는 코모도의 해안에 흠뻑 빠져있었다. 왕도마뱀의 살기가 흉흉한 코모도섬이지만 주변 해안은 온통 에메랄드 빛 그림이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스털링대학 양식연구소에서 근무했던 그는 TNC의 ‘코모도 생태계 보호작전’의 핵심 인물. 고가의 어류 양식만이 주민들의 해안파괴를 막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마이어 같은 양식전문가가 절실했다고 한다. TNC의 제안을 받자마자 주저없이 갓 결혼한 부인과 함께 머나먼 인도네시아로 날아왔다.

코모도 주민들이 가장 애호하는 불법 어로는 ‘폭약낚시’. 질산칼륨에 등유를 섞은 병폭탄을 산호 사이에 끼워 넣은 뒤 터뜨려 ‘정신을 못 차리는’ 고기를 주워 담는다. 혹은 물고기가 숨어든 산호구멍에 청산가리를 주사기로 쏘아 넣거나, 전복을 캐기 위해 아예 산호초를 부숴버리는 일도 한밤중 벌어진다.

라부안바조항에서 5km쯤 떨어진 해안에 마련한 TNC 시험양식장은 6평짜리 가두리양식장만 25개를 갖춘 상당한 규모. 플랑크톤 공급부터 부화, 치어 양식 등 물고기의 한 세대가 그대로 공장 내 20여개 대형수조를 따라 이어지고 제법 자란 양식어들은 바닷가 가두리로 옮겨지는 식이다.

가두리양식장에는 어른 팔 길이만한 농어 돔 베스 등이 가득했다. TNC의 양식장은 올 2월 남미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관계자들의 연수코스가 되기도 했다. 마이어씨는 “한국에선 어떤 횟감이 잘 팔리느냐”며 “이곳 양식어들은 현지 유통망을 통해 홍콩시장으로 팔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TNC와 국립공원측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은 턱없이 부족한 순시선. 현재 확보한 고속순시선 3척만으로는 코모도 드래건의 먹이인 사슴과 멧돼지 포획과 불법어로를 효과적으로 감시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TNC는 주민들에게 양식기법과 설비를 서둘러 무상으로 이전해주고 재투자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라부안바조(인도네시아)=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코모도 드래건'은…▼

1억년 전 지구상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는 왕도마뱀. 알에서 깨어난 직후에는 30cm에 불과하지만 5년 만에 길이 3m에 70kg까지 자란다.

사냥감에 비해 동작이 굼뜨기 때문에 물가 등에서 죽은 듯 엎드려 있다가 먹이를 덮치거나 잠자는 먹이를 공격하는 것이 주특기. 물소처럼 큰 먹이는 일단 다리를 물어 침 안에 있는 박테리아로 ‘폐사(斃死)’시키거나 긴 꼬리를 휘둘러 다리뼈를 부러뜨린 뒤 무리지어 뜯어먹는다. 피냄새를 8km 밖에서도 맡을 수 있어 한 번 물린 먹이는 끝까지 이들의 추적을 벗어나지 못한다.

수명은 50년 정도. 암컷이 8, 9월에 15∼30개 정도의 알을 땅이나 덤불 등에 낳으면 이듬해 3, 4월 부화한다. 갓 태어난 새끼의 가장 큰 천적은 바로 굶주린 어미 드래건이다.현재 코모도 국립공원 내 3개 섬에 4000여 마리가 살고 있지만 점차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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