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만만디’서 ‘走出去’로

  • 입력 2003년 6월 26일 16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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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쩌우추취(走出去)”를 외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밖으로 달려 나가자’라는 뜻의 이 말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목표 아래 최근 왕성한 해외 진출을 시도하는 중국 기업들의 성장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기업들이 말 그대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90년대 초만 해도 외국에서 기술력을 흡수하는 데 급급했던 그들이 이제는 정보기술(IT) 등 첨단 분야에서도 세계 초일류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중국 최대 PC 제조업체인 렌샹 그룹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서 델과 휴렛팩커드 등 세계적 기업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 부상했다. 하이얼, 창흥 등 중국 가전기업들은 자국 시장을 장악했던 일본 가전업체들을 몰아내고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물론 이런 중국기업의 급성장이 예견되지 않았던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선진국 기술을 받아먹기만 한다’고 생각했던 중국기업이 최근 기술 강국의 원조격인 일본 기업마저 적극 인수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만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기업들은 기술과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외국계 기업과 합병을 하거나 기술을 합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국은 외환 유출입 규제도 엄격하고 국내 경쟁도 치열해 그동안 기업의 독자적인 해외 진출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최근 ‘포브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섬유 메이커인 ‘지아러’그룹은 일본 가네마쓰 섬유의 어패럴 제조판매 부문을 인수했다. 또 전기 메이커인 ‘상하이 전기집단’도 일본 ‘아키야마 인쇄기 제조 회사’의 생산거점을 인수했다고 전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앞으로 이런 추세가 제조업뿐 아니라 첨단 경제 분야로도 확대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중국에는 매년 600억달러 이상의 외자가 유입되고 있다. 중국은 지속적인 수출 증대로 경상수지도 100억달러 이상 흑자를 유지하는 데다, 외국인 직접투자도 매년 500억달러나 들어오고 있다. 이제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본 다음으로 최고 수준인 300억달러 이상의 외환 보유고를 유지하고 있는 경제 강국이 된 것이다.

게다가 최근 중국 정부는 선진국과 주변국으로부터 물밀듯이 밀려오는 위안화 절상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외환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이 덕에 앞으로 중국기업들은 자국 내 일본기업뿐만 아니라 경영상 어려움을 격고 있는 외국(한국을 포함해)의 첨단기술 기업도 본격적으로 매수할 기회가 생겼다.

돌이켜 보면 지난 세기만 해도 중국은 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외형 성장’에 의존한 나라였다. 중국의 경제 규모는 컸지만 ‘경제의 질’까지 우수하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았다.

이때만 해도 동아시아의 산업 분업구조는 일본을 선두로 한국을 비롯한 신흥 4개국(NICS)이 그 뒤를 이었고 동남아시아 및 중국 등 후진국가가 그 뒤에 처져있는 ‘기러기떼’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중국은 일본기업들의 기술과 인재 그리고 생산관리시스템을 한꺼번에 사들임으로써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아시아 NICS 국가도 훌쩍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형뿐 아니라 기술수준, 생산관리 능력 등 ‘경제의 질’도 크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중국 정부는 중국기업들의 해외진출을 돕기 위해 1년에 6억달러의 외화를 지원하고 있다. 또 중국기업의 대외 진출의 창구가 되고 있는 상하이(上海)의 ‘공업 대외 교류센터’는 네덜란드의 ABN, AMRO그룹을 비롯해 미국 일본 유럽의 대형컨설팅 회사와 제휴, 앞으로 10억달러가 넘는 규모의 해외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동아시아의 경제지도는 크게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러기형 체제는 붕괴될 것이며 일본 중국 ‘양강(兩强)체제’가 정립될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 NICS 중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중화 경제권으로 흡수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동아시아의 외톨이 또는 ‘주변국’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지금 우리의 경제상황을 보면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을까 걱정이 커진다. 최근 무역협회와 상공회의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기업의 12%가 규제가 적은 해외로 이전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외국인 투자기업도 한결같이 투자여건 악화를 지적하고 있다.

중국은 힘차게 밖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 한국경제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시대를 열고 동북아 중심 국가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지금이야말로 힘을 모아 분발할 때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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