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톡톡인터뷰]17세소녀에 흠뻑빠진 日 "보아를 봐요"

  • 입력 2003년 3월 18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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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SM
사진제공 SM
《가수 보아(BoA)와의 인터뷰는 12일 오후 8시, 일본 최대 레코드회사 ‘에이벡스’의 스튜디오에서 하기로 돼 있었다. 약속 장소인 도쿄(東京)의 고급패션가 아오야마(靑山)에 40분 전쯤 도착한 기자는 아담한 우동집에 들렀다. 20대 남자 1명과 청바지 차림의 젊은 여자 2명이 들어와 ‘덴푸라 소바(튀김 메밀국수)’를 시켰다. 그 중 한 아가씨의 얼굴이 ‘왠지 낯이 익다’ 싶었는데 남자 종업원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가수 BoA잖아. 사인 좀 해 달라고 그럴까.” ‘시대의 획을 긋는 여성보컬의 재림(再臨)’이라는 찬사 속에 일본 열도를 흔들고 있는 소녀가수 BoA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2장의 밀리언셀러

요즘 BoA는 오사카(大阪) 나고야(名古屋) 도쿄를 잇는 일본 순회콘서트(27일 시작)를 준비 중이다. 나고야 공연 입장권은 발매 15분만에, 1만5000석이나 되는 도쿄 공연장 입장권은 발매 당일 매진됐다. 콘서트 횟수를 1차례씩 늘렸지만 도쿄의 예약 대기자는 5000여명이나 된다.

BoA는 12일 저녁 NHK가 위성 생중계한 골드디스크 대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바깥 나들이를 했다. 이 상은 매년 3월부터 1년간 100만장 이상 팔린 레코드와 가수에게 주는 일본 최고 권위의 상. BoA는 2002년 3월 발매한 1집 ‘Listen to My Heart’가 127만장, 올 1월 내놓은 2집 ‘발렌티(Valenti)’가 130만장 판매돼 2개의 트로피를 받았다.

‘발렌티’로 시상식 오프닝을 장식한 뒤 인터뷰 시간에 맞춰 매니저와 함께 달려온 참이라고 했다. 방송용 화장을 미처 지우지 않은 상태였지만 열일곱 앳된 얼굴을 감출 수는 없었다.

●“어른 앞에선 예의를…”

‘썰렁한’ 질문부터 던져봤다.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이유는?”

“글쎄요. 월드컵축구대회로 한국 이미지가 좋아진 덕을 봤겠죠. 일본어가 서툴지만 열심히 하려는 모습도 좋은 인상을 준 것 같고요….”

‘겸손’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매니저 아저씨 얘기로는 춤 잘 추고 노래도 잘하는 여자가수가 뜸했을 때 제가 나오니까 관심을 갖는 거라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BoA는 불황 속 일본 음반업계에 돌파구를 열어준 존재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중반의 아무로 나미에, 90년대 후반의 하마사키 아유미 이후 대형 여가수의 계보가 끊겨 새 얼굴을 갈망하고 있었다.

기교에 의존하는 일본 여가수와 달리 댄스와 리듬&블루스(R&B), 발라드를 넘나드는 파워풀한 가창력과 탁월한 춤 실력까지 겸비한 BoA는 일본 가요시장을 평정할 요건을 두루 갖췄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 SM엔터테인먼트 저팬의 남소영 이사는 “머리를 요란하게 염색하고, 노출도 마다하지 않는 일본의 10대 여가수에 비해 ‘되바라지지 않은’ BoA의 청순미도 어필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BoA는 도쿄의 한 아파트에서 친척 언니와 생활한다. 스케줄이 빡빡한데다 어머니가 자주 들러 ‘지방출장’ 다니는 정도의 느낌이라고 했다. 하루 일과를 물어봤다.

“콘서트에서 보여줄 노래 연습, 춤 연습을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요. 지금은 새로 배운 댄스를 ‘오보에’ 하는(외우는) 단계인데….” 그러더니 “아, 참!” 하면서 낭패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말로 얘기할 때는 일본말이 안 튀어나오게 하려고 했는데, 또 실수했네요.” 기자가 괜찮다고 했지만 “그래도 ‘어른’ 앞에서 예의를 지키고 싶다”며 ‘어른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데뷔 때는 한 곡만 불러도 헐떡대던 것이 지금은 1시간까지는 자신 있는데, 이번에는 1시간50분짜리여서 체력에 제일 신경을 쓴다고 했다. ‘엄마와 함께 하코네(箱根)온천의 전통료칸(旅館)에 갔을 때’를 즐거운 기억으로 꼽았다. “왜 어른들은 뜨거운 탕에 들어가서 ‘어, 시원하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나는 뜨거워서 혼났는데….”

●‘만들어진 스타?’

닮고 싶은 가수가 있느냐고 묻자 재닛 잭슨의 이름을 꺼냈다. “전에는 그 언니를 닮고 싶었는데 그 다음엔 좋아하게 됐고요. 가수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게 된 지금은 존경해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수십년을 한결같이, 노래와 춤으로 감동을 주는 모습이 아름답단다.

BoA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수 오디션을 보는 오빠를 따라갔다가 10대 초반의 여자가수를 물색 중인 SM에 발탁됐다. SM의 스타양성 시스템에 의해 노래와 댄스는 물론 영어 일본어의 개인교습까지 철저하게 훈련되고 다듬어졌다. 그래서 ‘만들어진 스타’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BoA도 굳이 부정하려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의 성과는 제가 딴전 안 피우고, 딱 한가지만 생각하면서 스스로 땀을 흘려서 이룬 결과이기도 해요.”

한국가수 중에는 과거 이성애 계은숙이 일본에서 성공했고 김연자는 지금도 중년층 이상에서 폭넓은 팬을 갖고 있다. BoA는 트로트 일변도인 한국가수의 일본진출사(史)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케이스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BoA가 무대에 오르면 일본의 10대 팬들은 ‘사랑해요’ ‘예뻐졌어요 BoA씨’ ‘저 한국말 배우러 유학 갔다 올 게요’ 등의 한글 글자판을 흔들며 열광한다. 하루 50여통의 팬레터 중 절반 이상은 군데군데 맞춤법이 틀릴 망정 한글로 쓰인 것들이다.

입시 전쟁을 치러야 할 나이에 BoA는 해외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제 또래들과 차이가 있다면 저는 이미 진로를 정했고, 친구들은 지금 정하는 중이라는 점이겠지요. 꿈은 될수록 크게 갖고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BoA는 “내년부터 중국 대만 홍콩으로 활동무대를 넓히기 위해 틈틈이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궁극적으로 노리는 무대는 미국.

한국문화 수출의 ‘21세기 버전’인 BoA의 세계무대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노래하는 1인기업 보아 ▼

보아(BoA)는 ‘노래하는 1인 기업’. 음반 판매액과 CF 모델료 등을 단순 합산하면 일본 진출 2년도 안 돼 100억엔(약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BoA는 2001년 5월 첫 싱글 ‘ID:PeaceB’를 발표해 일본 음반판매 랭킹인 오리콘차트 16위에 랭크됐다. 다섯 장의 싱글로 이름과 실력을 알린 뒤 2002년 3월 내놓은 첫 앨범 ‘Listen to My Heart’가 대히트했고 2집 ‘발렌티’는 발매 당일 오후 5시까지 92만장이 팔릴 정도였다. 2장의 앨범(장당 3000엔) 판매량 257만장과 평균 30만장씩 팔려나간 8장의 싱글(장당 1050엔) 판매량을 합하면 음반으로만 100억엔이 넘는 수입을 올린 셈.한일 양국의 음반 단가가 다르긴 하지만 이는 지난해 BoA의 국내 음반 판매액 100억원의 10배 이상이다. ‘혼다자동차’ ‘롯데제과’ ‘칼피스’ 등의 CF 모델로 활동 중이고 중국 공연에도 나서고 있다. 그는 문화관광부로부터 문화콘텐츠 수출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BoA의 성공은 일본의 전후세대에게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한국에 대한 친근감을 깊게 한 ‘무형의 효과’가 더 크다. 아사히신문 대중문화 담당 니시 마사유키(西正之) 기자는 “일본의 팬들이 열광하는 것은 국적을 떠나 BoA의 음악 자체에 매료됐기 때문”이라며 “일본 젊은이들은 BoA라는 창을 통해 한국에 대해 ‘가까운 친구의 나라’라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BoA는…▼

본명 : 권보아

생년월일 : 1986년 11월 5일

신장 및 체중 : 160㎝, 42㎏

혈액형 : AB형

종교 : 천주교

학력 : 중학(외국인학교) 중퇴, 2002년 대입검정고시 합격

데뷔 : 2000년 8월 1집 ‘ID:Peace B’ 발표

취미 : 음악 듣고 따라부르기, 영화 감상

좋아하는 음식 : 김치찌개, 메밀국수

친한 가수 : 신화 플라이투더스카이(한국), 후지모토 미키(일본)

특기 : 힙합댄스, 일본어와 영어회화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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