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국 핵 알레르기 치료용▼
일본 내에서 관방장관(정부 대변인)의 직책은 총리로 가는 길목에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은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의 아들로서 자신의 아버지가 총리이던 1970년대 말 그의 비서관으로 정치를 배우기 시작했다. 후쿠다 다케오는 기시 전 총리의 친동생 사토 에이사쿠의 내각에서 대장상, 간사장, 외상 등을 역임하며 ‘사토를 이을 황태자’로 각광받던 인물이었다. 후쿠다 관방장관은 지난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와 관련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참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과거 ‘황태자’들의 혈연적 정치적 두 아들이 현재 “법 이론상으로는 핵무기를 보유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잇따라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일본의 이 두 ‘입’은 각각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친한파’의 피를 이어받고 있지만 일본의 국제지위에 관한 한 ‘불침항모론’의 나카소네 후예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5월 발언은 ‘돌출적인, 그리고 내각지지율 하락을 만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평소의 정치적 소신에 따라 계산된 발언이다. 그리고 이들의 발언 배경에는 이른바 ‘핵 알레르기’의 치료를 위한 사토 총리 이후 일본 집권자들의 원망(願望)이 깔려 있다.
아베 부장관의 혈연적 작은할아버지이자 후쿠다 장관의 정치적 할아버지인 사토 총리는 1967년 12월 의회에서 이른바 ‘비핵 3원칙’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같은 자리에서 핵무기와 핵에너지에 대한 일본 국민의 ‘핵 알레르기’를 없앨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정치에서 은유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곧잘 회자되는 이 용어는 핵무기와 핵에너지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을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다.
실제로 사토 내각은 1967년부터 1969년까지 비밀리에 일본의 핵무장에 관한 동향 조사를 주도했다. 비록 조사의 결론이 ‘외교적 고립의 초래’, ‘재정적 부담’, ‘부정적 여론’ 등을 이유로 비핵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내려졌지만 이와 같은 사실은 ‘비핵 3원칙’을 주창한 주인공조차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가장한 일본 핵무장, 즉 핵 알레르기의 치료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후 일본의 정치인들은 사토처럼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항원(핵무기)을 제거하기보다는 환자(일본 및 주변국 국민)를 주기적으로 항원에 노출시킴으로써 항체를 만들게 하는 방법, 즉 면역성을 키우는 방법이 알레르기의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핵무기 개발 혹은 보유에 관한 논쟁부터 1990년대의 개헌논의에 이르기까지(또는 나카소네의 ‘재래국가론’부터 오자와 이치로의 ‘보통국가론’에 이르기까지) 등장한 일련의 직설적 은유법들은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민반응보다 근본대책을▼
일본의 정치인들은 왜 주기적으로 이웃 국가의 비위를 상하게 만드는가 하는 의문, 그리고 이러한 행위에서 일본 정치인들의 팀워크는 얼마나 환상적인가 하는 경탄에 대한 해답은 정치적 알레르기에 대한 일본 정치인들의 의학적 처방과 집요한 치료 의지에서 찾아야 하며, 일본 정치의 격세유전 구도에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인 치료계획 아래 핵 알레르기 완치를 위해 일관성 있는 주기적 발언을 거듭하는 일본의 태도에 대해 일과성의 주기적 과민반응을 넘어선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웅현 고려대 대학원 연구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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