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는 누구]점원아들 교수 노동자 '오뚝이 인생'

  • 입력 2002년 4월 28일 18시 25분


후진타오(胡錦濤·60)중국 국가 부주석은 80년대 중반 덩샤오핑(鄧小平) 시절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아온 ‘준비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지난해 8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사실상 내정된 이래 그의 정체는 상당부분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출생, 성장 및 경력〓42년 상하이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을 장쑤(江蘇)성 타이저우(泰州)에서 보냈다. 아버지는 토산품 잡화점의 점원이었고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해 베이징(北京)대와 쌍벽을 이루는 칭화(淸華)대에 들어갔으며, 재학중엔 한 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은 우등생이었다.

65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칭화대 교수가 됐지만 3년 뒤 문화혁명을 겪으면서 간쑤(甘肅)성 주택건설 현장으로 쫓겨났다. 이후 14년동안 구이저우(貴州), 시짱(西藏) 등 오지를 전전하면서 당 일꾼으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출세가도에 들어선 것은 82년 당 원로들의 눈에 띄어 공산주의 청년단 부(副)서기를 맡으면서부터.

이후 92년 최연소(50세)로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의 한 명으로 발돋움했다. 93년 당교(黨校) 교장을 거쳐 98년 국가부주석, 99년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임명됐다.

▽성격과 취미〓겉으론 온화해 보이지만 철두철미한 성격에 뚝심도 있다. 86년 구이저우성 당 서기로 재직 때 단신으로 시위현장에 나가 대학생들을 설득해 귀가시키는 담대함을 보였고, 88년 티베트 독립운동 소요 때는 헬멧을 쓰고 현장 진압을 주도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미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 충돌 사건 때 외국 방문 중이던 장쩌민(江澤民) 주석을 대신해 단호한 대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국제사회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의 겸손함은 많은 일화를 남겼다. 모범생 같은 외모와 달리 대학시절 사교댄스 클럽을 만들어 공연하는 등 춤 솜씨는 정평이 있다. 탁구를 즐기며 문학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다. 그를 ‘타고난 자유주의자’로 보는 사람도 있다.

▽정치적 정체성〓후 부주석은 권력을 키워가면서도 자신의 철학과 노선을 명확하게 드러낸 적이 없다. 중국 인민들은 최근까지도 그를 ‘차세대 지도자’로 생각하기보다 장쩌민 주석의 정치 이론을 잘 전파한 인물 정도로 알고 있다.

전체적으로 그의 성향은 급진적 개혁을 싫어하는 온건주의라는 평가가 많다. 그러다 보니 “몸을 너무 낮추고 카리스마도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또 “그동안 그는 당 원로들이 설정해 놓은 개혁의 한계 안에 안주하면서, 당내 각 세력 간 힘의 균형을 잡아주는 일만 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는 80년대 초 덩샤오핑의 노선과 달리 경제와 정치 개혁을 동시에 이루려 했던 후야오방(胡耀邦)의 영향과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후야오방이 실각하자 곧바로 그의 노선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앤드루 J 나단 컬럼비아대 정치학 교수는 “그가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있을 향후 10여년 동안 중국은 정치개혁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증가할 것이나 그가 전면적인 개혁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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