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美추기경단 사제박탈 3개조건 제시

  • 입력 2002년 4월 25일 18시 07분


미국의 테오도어 맥카릭 워싱턴DC 추기경이 성추문 대책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미국의 테오도어 맥카릭 워싱턴DC 추기경이 성추문 대책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미국 가톨릭 추기경단은 24일 앞으로 아동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거나 단 한번일지라도 죄질이 나쁜 행동을 한 사제는 곧바로 성직을 박탈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추기경단은 사제들의 잇단 성추문과 관련해 바티칸시티 교황청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및 바티칸 주교단과 이틀간 특별회합을 가진 뒤 이같이 밝혔다. 추기경단은 이날 자성을 기조로 한 ‘미국 사제들에게 보내는 서한’도 발표했다. 그러나 추기경단의 이번 대책은 당초 일부 추기경들이 약속했던 ‘불관용(Zero Tolerance·모든 성추행 사제 발견 즉시 성직 박탈)’ 기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관련기사▼

- 美 추기경단 대책…피해자-신도 반응

▽상습 성추행 사제 성직 박탈〓미국 추기경단이 밝힌 사제 박탈의 조건은 크게 3가지. 성추행이 △악명 높거나 △상습적이거나 △착취적일 경우다. 따라서 성추행 행위가 악명 높지 않거나 혐의가 불확실한 경우는 즉각적인 성직 박탈 대상이 아니다. 이 땐 해당 교구의 주교가 문제의 사제가 앞으로도 아동들에게 위협이 될 것인지를 고려해 최종 결정한다. 성추행 사제라도 계속 성직에 남아있을 수 있는 길을 터 준 셈이다.

▽‘처벌 기준의 후퇴’ 논란〓이날 발표 내용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하루 전 강론에서 발표한 “어린이를 해치는 성직자는 성당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원칙에서 크게 후퇴한 것. 또 이번 대책에는 과거 성추행 사제들에 대한 처벌 방침이 빠져 있다. 최근 문제가 된 사건들이 모두 10∼20년 전 발생한 과거의 사건들이라는 점에서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미국 주교회의 윌튼 그레고리 주교는 “이런 사안들에 대해 추기경간에 논란이 많았다”며 “회의시간이 2시간 이상 길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제와 전망〓미국 추기경단은 앞으로 성추행 사제 처벌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절차를 마련할 방침이다. 시어도어 매카릭 워싱턴DC 추기경은 “6월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리는 미국 주교회의에서 세부 사항이 토론을 거쳐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가톨릭교 관계자는 “여론의 흐름에 따라 6월 주교회의에서 지금보다 더 강도 높은 처벌 방안이 도출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美추기경단 對사제서한 요지▼

“우리는 이번 회의에서 마음과 가슴으로 일부 사제들이 자신을 의탁한 신도를 학대해 사제서품의 은총을 저버린 데 대해 여러분이 느끼고 있을 슬픔과 부끄러움을 많이 생각했다. 우리는 교회에서 이런 추문을 막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이 상처로 피해자와 가족은 물론 사제로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며 봉사하는 여러분과 교회 전체가 고통받고 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몸을 신성함과 사랑 속에 세우기 위해 노력해온 것에 깊이 감사하며 이 고난의 시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도울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치료의 은총이 내리도록 노력하는 동안 여러분도 우리 가까이 있어 주기를 바란다.

미래를 바라보며 우리 함께 영원하신 대사제께 이 고난의 시기를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용기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을 기원합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