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내 탓'을 '네 탓'으로 돌리는 미국

  • 입력 2002년 3월 6일 18시 25분


수입 철강에 8∼30%의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는 미국 정부의 발표는 일방주의로 치닫는 미국 대외정책의 방향을 다시 확인케 하는 부당한 조치다. 한국 유럽연합(EU) 일본 러시아 등 대상국 모두가 예외 없이 즉각 반발하고 나서 한바탕 무역전쟁이 벌어질 것 같은 전운이 감도는 데서 이번 조치의 부당성을 절감할 수 있다.

무역 자유화를 내세우며 세계 각국의 문을 열어젖히는 데 앞장서온 미국이 스스로 무역장벽을 높이 세우는 것은 분명한 모순이다. 외국에는 시장개방을 요구하면서 자국 시장의 문은 굳게 닫는다면 누가 공정하다고 하겠는가.

미국의 철강산업이 불황에 빠진 것은 외국 기업의 수출 공세가 아니라 그들의 잘못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미 철강업계는 대규모 합병이 계속되고 있는 국제적 추세를 외면한 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업체가 난립하는 바람에 기술과 시설이 뒤떨어져 오늘날의 위기를 초래했다. 또 퇴직자에 대한 과도한 연금 및 의료보장 등으로 인해 철강업계의 채산성이 악화돼 98년 이후 31개 업체가 파산했다. 자신이 주도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잣대를 적용하면 구조조정의 제물이 되어야 할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장벽을 들고 나온 미국의 태도는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책임전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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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정당인 공화당의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외국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독한 이기주의도 이해할 수 없다. 철강산업 중심지인 경합지역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웨스트버지니아주 유권자의 표가 절실하다고는 하지만 이를 외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빌미로 삼은 것은 당당하지 못하다.

정부는 미국의 부당한 조치에 결연히 맞서야 한다. 양자협상에서 단호한 의지를 보이는 것은 물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모든 수단을 다 활용해야 한다. EU 일본 등과 협력해 대응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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