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관계악화 불원 '도청장치' 침묵 일관

  • 입력 2002년 1월 20일 18시 15분



중국이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전용기로 사용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구입한 보잉 767기에서 첨단도청장치가 발견된 사건에 대해 세계 유수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양국 정부 모두 이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는 기류가 읽혀진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언제 이를 인지했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파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장 주석은 지난해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상하이(上海)로 갈 때 이 전용기를 이용할 예정이었으나 도청장치가 발견됨에 따라 다른 항공기를 이용했다. 이 때부터 미국이 이 사건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지난 6개월간 이 전용기에 도청장치가 설치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떠돌아다녔다. 이 전용기를 제작한 보잉사의 엘리자베스 버디어 대변인은 19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회견에서 “그동안 이 소문의 진원지와 진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해왔다”고 밝혔다.

민간항공사가 이 같은 정보를 수집하고 있을 무렵 미 정보기관은 이미 사건의 개요를 파악했을 개연성은 높아진다. 양국이 이미 이번 사건이 보도되기 전에 이 사건의 처리 향방에 대해 모종의 합의를 했을 가능성조차 제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해 4월 남중국해에서 정보수집 임무를 수행하던 미 해군 EP3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충돌사건 이후 개선돼온 미중 양국관계에 큰 악재로 작용할 소지는 적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베이츠 길 연구원은 “이번 일은 전용기 운항 전에 도청장치가 적발된, 일종의 실패한 첩보작전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20일 폭스TV와의 회견에서 “이번 사건이 다음달 21일로 예정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방중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초청을 받았고 그들 역시 우리처럼 정상회담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국민의 대미 감정은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의 한 관리의 말을 인용해 “중국 국민은 미국이 중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상정하고 항상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내 관측통들은 군부 등 일부 강경세력들이 중국 정부의 대미 유연정책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번 사건을 언론에 흘렸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베이징〓이종환특파원 ljh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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