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주석 전용기 도청 파문]왜 3개월간 쉬쉬했나

  • 입력 2002년 1월 20일 18시 15분


중국은 왜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전용기 도청사건을 알고도 입을 굳게 다물어 왔을까.

장 주석은 미국에서 제작된 자신의 전용기에 도청장비가 설치돼 있었다는 보고를 받고격노했다는 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이지만 사건이 불거진 뒤에도 표면적으로 그런 분위기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영국 BBC방송은 “중국은 지금까지 이 사건과 관련해 미국에 어떤 항의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국가주석의 전용기에 도청장비를 설치한 사건은 국가안보는 물론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심각한 현안임에도 중국이 이처럼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3개월 동안 양국 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장 주석은 도청장비가 발각된 직후인 지난해 10월19일 상하이(上海)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난 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불편했던 양국 관계를 완전히 해소한 듯한 회담 결과를 발표했다.

중국이 미국과 건설적 협력적 관계를 열어나가기로 했으며 회담에서 양국관계 발전방안과 대테러 협력, 세계 평화와 안정 수호 등을 위한 중요 현안을 합의했다는 것.

장 주석은 가장 최근인 8일 베이징(北京)에서 미 의회 대표단을 맞아 “미중관계는 다소 굴곡이 있었지만 계속 발전해 왔다”면서 “상호교류와 협력은 양국민은 물론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최근 양국 관계는 상당히 원만한 편이었고 그 배경에는 미국의 우호적인 조치들이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3일 중국에 핵실험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의 수출을 허용했다. 이 컴퓨터는 초당 100만개의 수식을 연산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터. 미국은 중국이 핵무기 프로그램과 암호 해독능력을 급격히 향상시켜 자국 안보를 해칠지 모른다고 우려해 슈퍼컴퓨터의 대중 수출을 금지해 왔다.

10일에는 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수출이 금지된 소방장비의 수출이 허가됐다. 백악관 측은 이 장비가 군사 목적으로 전용될 위험이 없고 테러의 위협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군사적 이유로 13년 동안 수출을 금지했던 품목을 갑자기 푼 데 대한 명확한 설명은 되지 않았다.

이에 앞서 중국은 11월10일 카타르 도하에서 오랜 숙원이었던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외교적 성공을 거뒀다.

이 때문에 중국이 이번 사건에 침묵을 지켜온 것은 미국을 견제하면서도 미국에 의존해온 중국이 전형적인 대미 ‘이중 접근법’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3개월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이 사건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동시에 보도된 것도 중국 측의 ‘의도적인 흘리기’가 아니냐는 추측까지 낳고 있다.

공식적으로 문제삼지 않으면서도 뒤로 이 사건을 흘려 미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함으로써 또다른 실리를 챙기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 다음달 21일 부시 대통령의 방중을 한달 앞둔 시점에 이 사건이 보도됐다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홍은택 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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