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윤교수 동티모르 르포]한국 상록수부대 구슬땀

  • 입력 2001년 8월 23일 18시 53분


《인도네시아의 혹정 아래 신음하다 1999년 8월 독립이 결정된 동티모르에 30일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거가 실시된다. 최근 이곳을 방문한 인도네시아 가쟈마다대 초빙교수인 양승윤(梁承允)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인도네시아의 휴양지 발리섬을 떠난 지 1시간40분. 비행기는 동티모르의 딜리에 도착했다. 강원도 정도의 넓이에 인구는 88만명에 불과한 이 나라로 통하는 유일한 정기 항로다. 가건물에서 유엔 관계자와 국제민간단체 회원들이 출입국 업무를 맡고 있었다. 유엔평화유지군 소속의 헬기 예닐곱대가 출동준비를 하고 있었고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돌아온 난민 10여명을 보호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친인도네시아계 민병대의 난동으로 폐허가 됐던 딜리는 아직 제대로 복구되지 않았다. 유엔 과도행정기구 청사와 아시아개발은행(ADB), 몇몇 외국 대표부 건물을 빼놓으면 번듯한 건물이 없었다. 방문객이 늘고 있지만 호텔 시설도 턱없이 부족하자 등장한 것이 태국 선적의 선박 두 척으로 된 선상호텔. 한 선박은 컨테이너를 3층으로 쌓아놓은 엉성한 모습이었지만 하루 숙박료는 150달러나 됐다.

21세기 첫 신생 독립국이 될 동티모르의 공식 국명은 ‘티모르 로로 사이’다. 동 트는 나라, 티모르라는 뜻. 30일 총선에서는 13명의 광역지역 대표와 75명의 지역구 대표 등 88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된다. 9월15일 제헌의회가 소집되며 이후 90일 내에 헌법이 만들어진다. 현재 16개 정당이 난립 중이나 독립운동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측이 압승할 전망.

유엔 선거관리위원회는 동티모르 2명, 한국 호주 인도 1명 등 총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국의 손봉숙(孫鳳淑)씨가 선관위원장이다.

독립 준비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650명의 방위군이 창설되어 훈련중이다. 경찰관 1000명도 3개월간 훈련을 마쳤다.

공식언어는 포르투갈어로 정했고 토착어인 테품어와 영어 인도네시아도 공용어로 채택됐다. 언어와 종족이 다양하고 생활터전 또한 제각각이라 독립 후 내부 통합에 진통이 예상된다.

경제 독립의 길도 험하다. 석유만 해도 2004년 독자 생산이 가능할 때까지는 침략자였던 인도네시아로부터 공급받아야 한다. 딜리시내 주유소에는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퍼르타미나의 유조차뿐이었다. 코프라(야자열매의 속을 말린 것)를 인도네시아에 팔아온 농민들은 현재 판로가 막히다시피해 힘겨워하고 있다.

한국이 치안유지를 위해 파견한 상록수부대가 활동 중인 라우템까지는 220㎞, 자동차로 4시간 걸렸다. 도중에 메티나로 군훈련소를 지났는데 신병들이 한국어 구령에 맞춰 태권도를 배우고 있었다. 상록수부대 4기 단장인 이정하 대령과 함께 동티모르 동쪽 끝 투투알라의 파견대를 찾아나섰다. 작은 마을을 지날 때 아이들이 “비바 코레아(한국 만세)”를 외치며 몰려오자 이 대령은 준비해간 군용 건빵봉지를 나눠주며 “사마사마 바기바기(골고루 나눠 먹어라)” 하고 말했다. 투투알라 마을에는 한국의 젊은이 20명이 평화의 사절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반세기 전 유엔과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나라를 지탱해야 했던 한국. 이제 한국인은 선관위원장으로, 평화유지군으로, 자원봉사대원으로 ‘해뜨는 나라, 티모르’에서 그 빚을 정성껏 갚고 있었다.

soyun@indosat.net.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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