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강경선회 배경]'정찰기 협상' 기선잡기 포석인듯

  • 입력 2001년 4월 13일 18시 56분


중국에 억류됐던 미국 정찰기 승무원들이 12일 본국으로 귀환하자마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돌연 중국에 대한 강경대응 방침을 천명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처음엔 승무원과 정찰기의 즉각 송환을 강력히 요구하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유화적 제스처를 통해 어렵게 일단 승무원만을 돌려받은 부시 대통령이 다시 강경하게 돌아선 이유는 뭘까.

워싱턴 외교가에선 이번 사건의 원인과 책임소재 규명, 미 정찰기의 송환 등 남은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18일 열리는 미중 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기선을 잡으려는 전략적 포석일 것이라는 관측이 가장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승무원 신병처리는 인도적 차원에서 해결이 가능했지만 법적 책임과 배상 문제가 따르는 후속 협상에선 미 중 어느 쪽도 쉽게 양보할 수 없는 만큼 미국이 최소한 중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에 임하기 위해선 강경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미 국방부가 이날 “중국 전투기와의 충돌 당시 미 정찰기는 자동항법장치에 따라 고정된 항로를 직선으로 비행했다”며 정찰기가 전투기 쪽으로 갑자기 선회하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는 중국측 주장을 반박한 것도 미국측의 면책을 미리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반면 중국측은 “미 정찰기가 ‘중국 해상’에서 중국 F8 전투기를 향해 날아들어 사고가 발생했다”며 충돌 책임이 전적으로 미 정찰기에 있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에 사고원인 규명이 미중 회담의 주요한 쟁점이 될 전망. 장치웨(章啓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충돌을 빚은 미 정찰기는 어떤 의미로도 정상적인 비행기가 아니며 이 정찰기의 조종도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으로선 승무원 귀환이라는 ‘급한 불’을 껐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보수 강경의 본색’을 드러낸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지난해 대선 때부터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던 부시 대통령이 이번 사건으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욱 굳혀 대결구도를 지향하게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 헨리 하이드 하원 외교위원장이 “이번 사건으로 중국의 본성이 여지없이 드러났다”며 부시 대통령에게 강력한 대처를 요구하는 등 보수파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중(反中)정서가 부시 대통령의 태도 변화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문제는 중국도 후속 협상에선 미국과의 ‘일전’을 불사하겠다며 강력히 맞서고 있다는 점이다.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는 이날 “미 승무원들의 송환으로 사건이 끝난 게 아니다”고 경고했으며 중국 외교부는 사고 경위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라 정찰기 송환문제를 처리하겠다고 밝혀 미국의 바람처럼 기체 송환이 쉽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은 이달 말 대만에 대한 이지스급 구축함 등 첨단무기 판매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고 다음달 초엔 1999년 유고 중국대사관에 대한 미국의 오폭(誤爆)사건이 2주기를 맞는 만큼 양국은 시기적으로도 미묘한 상황을 맞고 있다.

또 중국에 대한 미국의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 지위 연장 문제 등 현안이 첩첩이 산적해 있어 미중 간의 외교적 파고는 당분간 가라앉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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