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된 日 적군파 리더 시게노부의 일생]

  • 입력 2000년 11월 9일 19시 17분


8일 오전 일본 각 TV는 긴급 자막뉴스로 29년 전 ‘혁명’을 위해 일본을 등졌던 극력 여성테러리스트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전했다. 일본 적군(赤軍) 최고간부 시게노부 후사코(重信房子·55)가 일본에 잠입해 있다 오사카(大阪)에서 검거되자 일본인들은 경악했다.

이송 중 그녀는 수갑이 채워진 손을 흔들어 보이며 당당한 모습을 지키려 애썼다. 그러나 어느새 희끗희끗해진 머리칼은 숨길 수 없었다. 그녀는 2년 전 중국 베이징(北京)에 거점을 마련, 그동안 몇 차례 일본을 드나들며 활동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신문은 그녀가 체포된 뒤 “격동의 한 시대가 끝났다”고 평했다.

45년 도쿄(東京)에서 태어난 그녀는 상고를 졸업하고 간장공장에서 1년간 근무하다 65년 메이지(明治)대학 야간부에 입학했다. 당시 일본 대학가는 사상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69년 좌익그룹이 점거한 대학에 각목을 운반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그녀는 71년 ‘세계혁명을 위한 해외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레바논으로 향했다. 소담스러운 긴 머리를 날리던 26세 처녀의 몸이었다. 레바논에서 그녀는 ‘일본 적군’을 결성, 최고간부로 활동했다. 이스라엘의 점령에서 벗어나려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와 연대했으며 73년에는 이 단체 회원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 74년 일본적군파 소속 3명이 네덜란드 헤이그의 프랑스 대사관을 점거했는데 그녀가 배후조종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녀는 75년 국제테러리스트로 수배됐다.

그 후 75년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미대사관 점거, 77년 방글라데시 다카 공항의 일본항공기 납치, 86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미국 일본 대사관 로켓 공격, 87년 이탈리아 로마의 미국 영국 대사관 총격 등의 사건을 조종했다. 이들 사건을 이용해 그녀는 구속 중이던 12명의 적군파 동료를 구출, 국제적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녀는 지난해 일본 내의 지지자들에게 ‘전쟁에는 반대하며 평화와 환경운동으로 노선을 바꾸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과거의 테러활동을 반성하는 표현도 있어 심경 변화가 엿보였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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