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부르디외-현택수교수 대담]세계화시대 좌표와 NGO역할

  • 입력 2000년 4월 17일 19시 45분


《유럽의 지성은 급변하는 세계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고려대 사회학과 현택수(玄宅洙)교수가 15일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70)를 만나 세계화 시대의 문화 정치 그리고 비정부기구(NGO)의 새로운 역할 등에 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부르디외는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와 함께 현대 유럽 지성의 상징으로 꼽힌다. 대담은 15일 부르디외가 교수로 재직중인 파리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진행됐다.》

▽현택수〓정보화, 세계화란 새로운 사회현상이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이같은 변화에 직면해 세계문화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다고 판단하십니까.

▽부르디외〓세계의 지배세력들은 ‘보편화’란 완곡하고 모호한 어법을 쓰고 있지만 사실상 세계화는 세계를 지배하는 세력들의 경제적 문화적인 법칙에 따른 세계 통합입니다. 19세기 영국작가인 제인 오스틴 스타일을 흉내낸인도작가의 소설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대개는 국가적 지역적 특수성에 기반을 둔 문학작품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제화가 고유의 지역적 특성들을 촉진시키는 역설이 성립하는 것이지요.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영화분야에서는 시장이 국제화될수록 영화의 관객에 대한 종속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일본영화와 프랑스영화는 아직 독창성을 간직하고 있지만 할리우드의 공격으로 이탈리아영화 독일영화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미국의 대형 영화제작자들은 시사회를 개최해 어떤 식으로 영화를 끝맺는 것이 관객에게 가장 어필하는지를 조사한다고 들었습니다. 흥행의 성공여부가 영화 제작의 방향과 주제를 결정합니다.출판도 마찬가지예요. 출판사들은 책을 출판하기도 전에 판매부수부터 먼저 따집니다. 독일계 다국적기업 베르텔스만은 주주들에게 15%의 이윤을 보장해 줌으로써 출판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작품의 가치를 상업적 성공으로 측정하는 이같은 경향으로 인해 예술 철학작품, 지적저작물들은 상업적 성공여부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문화의 세계화는 문화의 타율성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습니다.

▽현택수〓최근에 ‘정치의 장(場)에 대한 소고’라는 책을 출판하셨는데 그 책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점은 무엇입니까.

▽부르디외〓정치의 세계도 예술의 세계처럼 고유한 법칙을 갖고 있으며 폐쇄적이지만 경제적 영향력에 종속돼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닫혀져 있지는 않아요. 정치가들은 “우리는 대중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은한편으로 늘 돈을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이 뭔가 일을 하는 것은 정치 게임의 밖에 있는 유권자들이 정치인에게 그것을 하라고 요구해서가 아닙니다.정치인들은 지지자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적들 때문에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좌파들은 극우 국민전선 당수 장 마리 르펜 때문에 많은 일을 합니다.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총리는 당내 최대 라이벌인 로랑 파비우스(현재 재무장관)의 존재를 의식해 항상 뭔가를 합니다. 결과적으로 정치인들은 상대방 때문에 서로서로 정책을 입안하고 움직이는 것이지요. 이책을 통해 정치행위는 정계 내부의 조건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현택수〓최근 세계적으로 비정부기구(NGO)의 정치참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시애틀 각료회의를 전세계 시민단체들이 저지했던 사실을 기억하시지요. 한국에서도 총선기간동안 부패한 정치인들의 정치참여를 저지하려는 시민운동이 있었습니다. 정치의 장에 시민단체의 개입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르디외〓NGO의 정치개입은 아주 새롭고 중요한 현상인 동시에 내가 미래에 갖고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도 합니다. 시민단체들이 우선 국내 사회문제에 개입하고 나아가 국제적 차원의 이슈들로 확대함으로써 진정한 국제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 각국의 주민들이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경제의 국제화가 가져올 그들의 불행을 깨닫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사회주의자들의 국제적 연대를 추진하기 위해 나는 노조옹호론자들과 함께 유럽헌장 선포 계획에 착수했습니다. 나는 한국에서도 시민의 삶과 사회보장은 물론 시민의 문화를 위협하는 정치적 세력의 출현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여러차례 일어난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정리·파리〓김세원특파원> clai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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