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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3월 29일 19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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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국방예산 50% 증액▼
경제난으로 크게 줄었던 전략무기 실험이 푸틴의 당선에 맞춰 실시된 것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이날 실험은 러시아가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임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한 것으로 향후 ‘푸틴의 러시아’가 어떤 성격을 띨 것인지를 가늠케 한 대목이었다.
지난해 8월 푸틴이 보리스 옐친 전대통령의 후계자로 등장한 후 서방에서는 옐친 집권 9년 동안 이어져온 러시아와의 밀월관계가 깨질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장 체첸전을 둘러싸고 푸틴은 서방의 인권압력에 ‘내정간섭’이라며 강하게 맞섰다.
푸틴이 등장하면서 러시아에서는 냉전 이후 처음으로 군사력 증강 움직임이 나타났다. ‘강한 군사력 없이는 강대국이 될 수 없다’고 믿는 푸틴으로 인해 군부 입장이 강화됐다. 군수산업에 대한 정부지원이 늘고 올해 국방예산도 50% 증액됐다.
푸틴은 지난해말 대통령 권한대행에 지명된 지 1주일이 되지 않아 핵 선제사용 등의 공세적 내용을 담은 ‘신안보정책’을 내놓았다. 푸틴이 대통령 대행에 오른 뒤 서명한 12개의 대통령포고령 중 절반은 군사 사항이었다. 특히 중등학교 교련교육 부활은 ‘냉전시대의 발상’이라는 비난을 불렀다.
최근 러시아안보회의(SB)는 ‘신외교독트린’을 채택했다. 독트린의 핵심은 ‘국제질서의 다극화’와 ‘러시아의 이익보호’에 있다. 국제질서의 다극화란 미국이 세계질서를 주도하며 모든 국제분쟁에 간섭하는 것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美등 해외순방 줄이어▼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국제무대에서 ‘2류국’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특히 옐친은 95년 이후 건강악화로 주요 해외방문이나 정상회담을 미루기 일쑤였다. 젊은 푸틴은 적극적인 정상외교로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을 되찾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당선 전 20여개국의 초청을 받아놓았다. 5월 취임 직후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회담을 위해 중국을, 7월에는 오키나와(沖繩) 선진8개국(G8) 정상회담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다. 9월에는 유엔의 밀레니엄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등 올해 안에 꼭 가야 할 해외방문만 12회가 넘는다. 푸틴은 옐친과 달리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이해와 입장을 강하게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노선 이탈 않을것"▼
그러나 푸틴의 대외정책이 전보다 강경하리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서방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끌고 가지는 않으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급한 현안인 경제재건을 위해 서방지원이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외교독트린의 ‘보호해야 할 국가적 이해’도 경제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뜻이다.
이는 푸틴이 실용적으로 대외문제를 풀어나갈 것임을 의미한다. 러시아의 국가적 자존심과 국가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사안이 아닌 한 서방과의 협력관계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러시아 미국캐나다연구소의 빅토르 크레메뉴크 부원장은 “푸틴은 현실적 인물”이라며 “러시아의 외교정책은 급격하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