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통신망 감청 뇌물 마케팅 때문" 美 CIA국장 반격

  • 입력 2000년 3월 19일 19시 59분


미국이 통신감청망 ‘에셜론(ECHELON)’을 이용해 유럽국가들의 산업기밀을 빼내왔다는 사실이 공개돼 유럽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미 중앙정보국(CIA)의 제임스 울시(사진) 전 국장이 유럽을 정면으로 공격해 화제다.

울시 전국장은 17일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에 ‘왜 우리는 동맹국가들을 감청하는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우리가 당신네들을 감청한 것은 사실이지만 왜 그랬는지 생각해봤느냐”고 물었다.

그는 “미안하지만 유럽에는 우리가 정탐해 빼낼 만큼 가치있는 첨단기술이 거의 없다”면서 “그럼에도 우리가 감청한 것은 유럽국가들이 뇌물로 국제 경쟁질서를 어지럽히기 때문”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지난달 유럽의회가 공개한 ‘캠벨보고서’에 따르면 1994년 프랑스의 톰슨사는 브라질의 13억달러(약 1조4300억원)짜리 레이더 시스템 사업을 미 방산업체 레이시언사에, 95년 유럽 에어버스사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60억달러짜리 항공기 구매계약을 미 보잉사에 빼앗기는 과정에서도 에셜론에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울시 전국장은 “미 정보기관이 개입한 것은 유럽의 두 회사가 브라질과 사우디아라비아측에 엄청난 뇌물을 주는 것을 포착했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이런 뒷거래 정보를 미국 회사들에 주지 않고 입찰 해당 정부에 통보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같은 내용이 다 알려졌는데도 유럽 언론들은 한번도 쓰지 않고 있다”고 불만스러워 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감청에 나선 것은 당신들이 기술적으로 떨어지고 돈은 많이 드는 제품을 만들어 뇌물로 마케팅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유럽 정부는 심지어 뇌물에 대해서도 세금을 면해 주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그는 유럽은 아직도 장 콜베르(17세기 중상주의의 이론가로 국가보호주의를 제창)를 신봉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진다면서 미국이 신봉하는 애덤 스미스(자유방임주의)로 개종하라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가 에셜론에 관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한 것에 대해 그는 “위원회가 어서 워싱턴을 방문했으면 좋겠다”면서 “그러면 나는 부패방지협약에 관한 세미나와 ‘왜 스미스가 콜베르보다 21세기 경제에 부합하는 사상가인가’를 논의할 세미나를 준비하겠다”고 비꼬았다.

그는 “우리의 감청을 책망하기보다는 스미스를 받아들여 침체된 경제부터 되살리라”면서 “그러면 더 이상 뇌물에 의존할 필요가 없고 우리도 감청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고 기고문을 맺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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