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고위급회담/쟁점-전망]평화정착 포괄협상 갈림길

  • 입력 1999년 9월 8일 20시 02분


한반도 정세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북―미 고위급회담이 7일부터 또다른 냉전시대와 분단의 상징지역이었던 베를린에서 시작됐다. 이번 회담에서의 핵심의제는 세계적 현안이 되고 있는 북한의 미사일발사 문제. 하지만 이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미국이 북한측에 제시했던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포괄적협상이 제 궤도에 오를 수 있느냐다. 그동안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해 침묵을 지켜온 북한이 수용의사를 밝히고 본격적인 협상에 나설 것인지에 세계적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냐, ‘대치’냐를 가름할 이번 회담의 관전 포인트를 몇가지로 나눠 살펴본다.

▼北 미사일유보 약속방식은▼

◇문서화하되 공개하지 않을 수도

북한의 김계관(金桂寬)외무성부상은 지난달 제네바에서 열린 북―미 양자회담에서 찰스 카트먼 한반도평화회담담당특사에게 “미국이 하기에 따라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언질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이번 회담이 성과를 거둘 경우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 미국에 미사일발사 유보 약속을 전달하느냐다. 미국측은 어떤식으로든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하라고 요구한다. ‘확약’의 형식으로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먼저 문서를 통한 방식. 하지만 미국이 문서를 요구할 경우 북한측도 미국의 반대급부 이행에 대한 문서화를 역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는 구두 약속이다. 가능성은 가장 높지만 약속이행에 대한 담보력이 약하다. 또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서로 말이 달라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문서화를 하되 공개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측이 문서화나 구두약속 없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 현재의 상태를 계속 이어갈 수도 있다.

미사일 발사유보에 대한 양측 간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유보의 한계시한이 또다른 쟁점이 될 것이다. 한계시한이 불분명해지면 북―미간 봉합의 실타래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

▼美, 北에 선물 줄까?▼

◇경제제재 완화-식량지원중 택일

북한이 미사일발사 유보를 결정할 경우 미국이 내놓을 ‘보따리’도 관심사다. 미국은 포괄적 접근구상을 위해 준비해놓은 ‘큰 보따리’속에서 일부를 꺼내 북한에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맛보기’인 셈이다. 미국이 내놓을 선물로는 경제제재완화와 관련해 행정부가 할 수 있는 몇가지가 될 것이다. 특히 △물자 수출금지 △금융거래 및 자산동결조치 등에서 일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이 생각하는 범위 이외의 요구조건을 내걸 수도 있다. 우선 북한으로서는 절박한 문제인 식량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 미국은 95년 이후 북한의 최대식량지원국이다. 따라서 식량지원 확대와 장래시점까지의 안정적인 지원보장 등을 추가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상징적 조치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적성국교역법이 정하고 있는 적성국 리스트에서 자국을 제외시킬 것을 원한다.

또 94년 제네바 기본합의 당시 미국측이 약속했던 연락사무소 개설 등의 관계개선안도 제시될 수 있다. 한가지 확실한 점은 미국이 이 모든 카드를 한꺼번에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미국은 미사일발사 유보의 대가로 ‘미끼’를 던진 뒤 포괄적협상으로 북한을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강석주-페리라인 가동될까▼

◇강석주 방미합의땐 관계 급진전

북한으로부터 미사일 발사 유보 약속을 받아내는 것과 함께 미국이 이번 북―미회담에서 가장 중시하는 전략적 목표다. 강석주(姜錫柱)―페리 라인의 가동은 곧 포괄적 협상의 본격적인 시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계관―카트먼 라인은 어찌보면 포괄적협상을 본 궤도에 올리기 위한 일종의 예비창구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강석주외무성제1부상은 카트먼의 파트너인 김부상과 같은 차관급이지만 그 무게는 매우 다르다. 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이 지난 5월 북한을 방문, 강부상에게 포괄적 구상안을 설명한 것은 강부상이 김정일(金正日)의 핵심측근이란 점을 감안한 고도의 계산적 행동이었다는 후문이다.

미국은 페리 조정관의 방북 직후부터 강부상에 대한 초청의사를 북한측에 여러 채널로 전달해왔다. 말이 초청이지 사실상 포괄적 협상을 빨리 시작하자는 메시지였던 셈이다. 하지만 북한측은 강부상의 미국방문에 관한 어떠한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협상에서 강부상의 방미 일정이 확정된다면 북―미협상은 또다른 차원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

▼향후 회담 어떤 형식될까?▼

◇성과없을땐 '金-카트먼'회담 유지

이 문제는 회담의 결과와 직결될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상황은 더 이상의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상태. 그러나 북한이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로 입장을 선회한 만큼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을 것으로 당국자들은 관측한다. 또 하나는 별다른 성과가 없이 김계관―카트먼 라인이 추후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지는 것. 이는 양측간의 이견이 계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으로서도 그다지 나쁜 결과는 아니다.

회담에서 주목할 만한 진전이 이뤄진다면 추후 회담의 형식은 다소 복잡해진다. 강석주―페리 라인의 가동에 합의한다면 이는 미국으로서는 더 바랄 수 없는 성과다. 강석주―페리 라인이 포괄적협상을 시작할 경우 그동안 진행돼온 북한미사일의 배치 수출 개발 등 실무협상은 로버트 아인혼 미국무부 비확산담당차관보와 북한의 장창천미주국장 라인이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 발사유보 문제가 완전 타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포괄적협상이 시작된다면 미사일 발사문제는 김계관―카트먼 라인이 계속 다룰 수도 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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