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문단에 「이청준 열기」…파리서 강연-토론 성황

  • 입력 1999년 5월 11일 19시 45분


런던출장 중이던 프랑스 악트쉬드출판사 위베르 니센사장은 10일 아침 서둘러 파리행 기차를 탔다. 역부터 막히기 시작한 길을 돌고 돌아 세귀어 18번가 악트쉬드 파리 사옥에 도착한 것은 약속시간을 조금 넘긴 오후 3시40분경. 그는 숨을 몰아쉬며 한국에서 온 손님, “무슈 리”를 반갑게 부르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한국 소설가 이청준. 그가 프랑스 외무부와 주한 프랑스대사관, 한국의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함께 벌이는 양국 작가교류 프로그램의 한국측 초청작가로 파리를 방문했다. 니센사장은 그의 다음 작품 출간을 매듭짓기 위해 만사 제쳐놓고 출장지로부터 달려왔다.

프랑스에서 이청준 열기는 자뭇 뜨겁다. 같은 날 라신출판사는 그의 또다른 작품 ‘제3의 현장’을 ‘그 노래 다시 부르지 못하리’라는 제목으로 발간했다. 또 지난3월 프랑스의 예술전문TV채널 아르테가 ‘서편제’를 방영한 뒤 ‘서편제’가 수록된 단편선집이 눈에 띄게 팔려나가고 있다.

지난 91년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가 처음 불어로 번역된 이후 불과 9년만의 일이다. 90년 프랑스 출판사로는 처음으로 악트쉬드가 한국문학총서를 낼때만 해도 프랑스 사회에 한국문학은 ‘낯선 언어’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이청준문학제가 파리에서 열린 사실은 그 관심의 깊이와 열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0일 오후5시(현지시간)부터 파리 시내 이에나 거리의 한국문화원. 청중 50여명 중 절반은 프랑스인이고 나머지는 한국유학생들. 서편제 영화상영 이후 토론이 시작되는 7시가 되자 객석은 순식간에 꽉 찼다. 이청준이 파리 동양학대학(Inalco) 교환교수로 와 있는 작가 최윤과 1시간 넘게 토론을 벌이는 동안 열기는 높아만 갔다. 이청준은 통역을 빌렸고 최윤은 불어로 직접 말했다.

이청준은 이날 “서편제에서 그려지는 한(恨)은 원한과는 달리 아픔을 풀어가고 넘어서는 한국적인 창조의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또 작가는 현대 정보화사회에서의 문학의 의미에 대해 “자기 혼자만을 믿고 살아가는 개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의 마당을 만드는 것이 문학의 몫”이라고 말했다.

90년대 한국문학 프랑스어 번역에 불씨를 당긴 최윤은 “프랑스 문단에서 한국문학은 비록 주류는 아닐지라도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청준을 위해 르 클레지오 등 자국의 일급 작가, ‘작가의 집’대표 등과의 대담 등을 마련해 두었다. 갈리마르 세이유 등 대표적인 출판사 담당자와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는 일정.

이청준의 프랑스방문은 국제사회에서 한국문학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국가간 문학교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는 각별하다.

〈파리〓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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