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시대 40]선진국의 국공립공연장

  • 입력 1998년 11월 26일 19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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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일의 휴양도시 바덴바덴이 오페라 연주장인 축제극장(페스트슈필하우스)문제로 시끄러워졌다. 라이너 푀겔레 극장장이 해임된 것. 현지신문은 “객석 평균점유율이 50%에 불과해 그가 해임됐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사회 분석 결과 마케팅 공연기획 등 곳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도 최근 2년사이 두차례나 극장장이 교체됐다. 언론은 “민간 기부금 모금액이 목표치에 크게 모자랐던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성과가 부진한 극장은 경영쇄신의 칼날을 맞는다는 서구사회의 극장경영패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공연장들이 바야흐로 개혁과 경영효율화의 요구에 직면하게 됐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신낙균(申樂均)문화부장관은 답변을 통해 “국립극장에 전문인력을 받아들이고 책임경영제를 도입해 효율을 높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화부 산하의 국립극장, 서울시 산하의 세종문화회관 및 지방 문화예술회관 등 공공 공연장의 경우 개혁바람이 더욱 거세다. 그동안 무엇이 문제였을까.

첫째는 ‘채찍도 당근도 없는’ 예산행정. 작년에 1백40억원의 지출에 고작 9억원의 수입을 기록한 국립극장의 사례가 바로 이를 말해준다.

“국가나 시에서 비용을 전액 대주고 수입은 모두 가져갑니다. 이익을 남기지 못했다고 책임을 추궁하지도 않았고요. 이익이 많이 남았다고 해서 다음해에 더 큰 공연준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이런 상황에선 극장의 창의력과 열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탁계석(卓桂奭)21세기문화광장 대표의 지적. 그는 이어 “예산을 독립시켜 극장 스스로 수지를 맞추도록 하고 정부에선 보조금을 주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국공립 극장을 민영화하거나 극장이 민간 지원을 유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둘째 문제는 인사. 공연장 대표가 정치바람을 타 정권과 임기를 같이해왔다는 점이다.

“외국에선 이사회 등에서 독립적으로 극장장 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이런 기구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형식적이지요.” (최준호·崔畯皓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한마디로 관치(官治)가 ‘무기력한 공연장’을 낳았다는 지적들이다. 공연문화 선진국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미국의 경우 공연장은 회사법인이며 이사회를 통해 주요 사항을 결정한다. 법인은 민간 협찬기업과 중앙 또는 지방 정부가 공동으로 구성한다. 공무원은 실무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뉴욕의 링컨센터를 보자. 후원 33개사 대표로 구성된 집행위원회가 재정을 관리하고 문화부장관 등 각료 3명을 포함한 이사회가 총괄적인 결정권을 갖는다.

프랑스엔 고전극을 공연하는 ‘코메디 프랑세즈’ 등 5개의 국립극장이 있다. 국가가 전적으로 재정을 책임지지만 경영에 대한 간섭은 하지 않는다. 전문성을 갖춘 극장장 아래 예술감독과 공연기획팀 마케팅팀이 공연에 대한 책임을 진다. 영국도 런던시립 ‘바비칸 센터’ 등 공연장이 시 행정부와 분리된 특수법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민영화 또는 민간위탁경영으로 하면 우리나라 공연장도 달라질까. 전문가들은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지 않은 극장이라면 자율경영도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공연장은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역할의 달성여부에 따라 경영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

외국은 공연장들마다 기능이 명확히 구분돼 있다. 독일 뮌헨의 경우 주립극장인 ‘슈타츠오퍼’는 전통적 오페라를 공연하며 90% 가까운 국고지원을 받는다. 같은 도시의 ‘가스타이’극장은 대중적인 레퍼토리를 공연하면서 70%에 육박하는 재정자립도를 유지하고 있다. 슈타츠오퍼의 목표가 ‘전통문화의 유지보존’에 있기 때문에 재정자립보다는 공연의 질만으로 평가받는다.

“국내 공연장들도 고급예술의 유지보존에 힘쓸 것인지 대중적 예술을 값싸게 전파할 것인지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해요. 공연 선진국을 보면 극장 이사회가 목표에 따른 경영실적을 평가하고 보고서도 배포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극장은 ‘민족문화 창달’같은 추상적 과제를 안고 있지요. 극장의 성과를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지 불투명해집니다. 자칫 수익성 등 수치에만 집착할 위험도 있습니다.”(김주호·金周鎬 LG연암문화재단 부장)

공연장 경영효율화의 또 다른 핵심은 산하단체 정리문제. 국립극장은 7개, 세종문화회관은 무려 9개의 산하단체를 거느리고 있다.

60,70년대 이들 단체는 공연문화 활성화에 큰 기여를 했지만 민간의 역량이 커진 지금 국가 또는 지자체가 구태여 이 단체들을 부여안고 있어야 하느냐는 소리도 높다.

미국 링컨센타의 경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등 세계적 공연단체가 있지만 이들은 극장을 근거지로 하는 상주단체일 뿐 행정적으로 극장에 귀속되는 존재는 아니다. 유럽에서도 극장 산하기구 형태의 공연단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단 우리 문화의 맥을 가꿔온 창극단 국악관현악단 등 전통 예술단체의 경우 지속적인 지원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문화계의 의견. 홍사종(洪思琮)정동극장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중국 북경시의 경우 비인기 단체인 쿤쥐(昆劇·명대의 전통연극)단은 정부가 100%지원을 통해 보존 육성하고 있더군요.”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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