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중퇴학력의 피셔는 60∼70년대 택시기사 공장노동자 책외판원 등을 전전하면서 무정부주의 극좌 혁명운동을 벌였다. 그는 60년대말 경찰을 구타하고 베트남 반전 시위를 벌여 구속된 적도 있었다. “폭력은 이념과 사나이다움의 혼합체”라는 것이 당시 그의 신조.
골수 좌파혁명가였던 그가 법치주의자로 변신하게된 계기는 77년 한스 마틴 쉬라이어 독일 사용자협회(BDA)회장 피랍사건때. 그는 쉬라이어 회장의 피살을 정당화하는 독일 적군파(RAF)의 서한을 보고 “좌파의 비인간성을 느꼈다”며 결별을 선언했다.
피셔는 이후 수년동안 자동차공장 노동자, 야간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대학에서 철학강의를 도강했으며 81년 녹색당에 입당했다.
현실온건주의자로 변신한 그는 헤센주에서 두차례나 환경장관을 지냈으며 94년 총선에서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세차례나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으며 지금은 독신이다.
〈본〓윤희상특파원〉hees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