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엔화 안정협력]국제금융위기에 美 「개입」급선회

  • 입력 1998년 6월 18일 0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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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정부가 17일 엔화가치 방어를 위해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한 것은 양국이 ‘모종의 대결탁’에 합의했음을 뜻한다.

양국은 이날 합의와 동시에 전격작전을 치르듯 도쿄와 런던시장에 개입, 엔화를 강세로 돌려놓음으로써 엔화가치 폭락세로 촉발된 국제금융 불안은 극적으로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나타난 엔화가치의 급반등이 미일의 공동 시장개입 결과로 알려지자 그 파장은 곧 런던 뉴욕 등 각국 외환시장으로 퍼졌다. 이같은 미일 공조는 불과 24시간 전만 해도 시장개입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온 미국이 환율정책을 1백80도 선회한 결과다.

미국은 공동 시장개입을 결정하기에 앞서 일본으로부터 △추가 경기부양책 △내수시장 개방 △경제구조 개혁 등에 대한 언질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미일 양국은 ‘적극적 시장개입’과 ‘과감한 개혁정책 추진’으로 ‘빅딜’을 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정책 선회〓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은 16일까지만 해도 “엔화약세는 기본적으로 일본경제의 구조개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엔화가치 방어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에 있다는 뜻이다.

특히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클린턴 미행정부는 미국 금융시장으로 대규모 해외자본유입을 불러온 달러강세 정책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

그러나 엔화급락세가 초래한 부작용이 당초 예상 이상으로 심각해지고 특히 엔화급락세가 아시아금융시장에 이어 미국 유럽 증시에까지 파장을 일으키자 미국은 상황을 재점검하기 시작한 것 같다.

미국내에서 “아시아 위기가 재연되면 아시아에 투자한 미국기업들이 온전치 못하다”는 아우성도 나왔다. 수출에 타격을 입은 미국 산업계와 의회에서 “미국은 환율정책을 재검토하라”는 요구가 나온 것도 정책선회의 바탕이 됐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배려〓미국을 더 압박한 것은 중국의 심상치 않은 동향이었다. 지난해 아시아 통화위기 이후 중국은 줄곧 위안(元)화 평가절하 압력을 받으면서도 잘 견뎌왔다.

그러나 최근 엔화급락세가 심각해져 자국의 수출부진과 실업증가가 위험수위에 근접하자 중국은 “미일 양국이 엔화가치 급락에 팔짱을 끼고 은근히 즐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엔화약세가 더 지속되면 위안화 평가절하가 전격적으로 단행될지 모른다는 관측 때문에 전세계 주가가 출렁댔다. 25일 중국을 방문할 클린턴 미대통령으로서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서라도 환율정책을 재고해야 했다.

▼일본의 입장〓일본은 엔화약세가 제조업계의 수출경쟁력을 높인다는 단기적인 이점이 있으나 아시아 금융위기가 본격 재연되면 일본 금융기관이 각국에 빌려준 채권을 회수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크게 우려해왔다.

엔화약세의 중요한 원인이 금융기관 부실채권 때문인데 상황이 더 악화하면 수습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달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증폭됐다.

일본은 4월에 무려 1백억달러 이상을 쏟아붓고도 엔화약세 저지에 실패한 쓰라린 경험을 되풀이 할 수 없었다.

하시모토총리가 15일 “엔화약세는 일본 혼자서의 힘만으로는 저지할 수 없다”며 미국 등 국제사회에 협조를 요청한 것도 같은 배경이다.

일본은 미국에 17일 상황의 급박함과 미국의 요구조건 수용방침을 알리고 극적인 방향선회를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엔화가치는 안정될까〓미일의 공동 개입으로 당분간 엔화가치는 급속히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엔화급락세의 근본 원인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누적과 경기 침체 등 일본경제의 구조적 요인 때문이어서 공동개입의 효과가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어떻든 세계경제의 ‘두 큰손’이 협력해 시장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행동에 나선 이상 엔화는 일단 수렁에서 빠져나올 전망이다.

외환전문가들은 미일 양국이 현재 적정선으로 보는 환율수준을 달러당 1백35엔 정도로 보고 있다.

〈도쿄·워싱턴〓권순활·홍은택특파원〉kwon88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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