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지옥 자카르타]나뒹구는 시신과 약탈자

  • 입력 1998년 5월 16일 06시 50분


14일 오후 자카르타 시내 가톨릭계 야트마자야대 앞에서 육군병력 1백여명이 시위대와 합류해 ‘개혁’ 구호를 외치는 장면을 운좋게 목격했다. 송고를 하는 손이 떨렸다. 어느 나라에서나 군부가 시위대에 가담하면 ‘피플 파워’가 승리하지 않았던가.

15일 오전 발행부수 60만부의 인도네시아 최대 일간지 콤파스신문사가 있는 팔메라가(街)를 향했다. 안면이 있는 아분 산다 경제담당부국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책상에는 ‘15일 오전 3시 귀가했으나 도로가 막혀 아직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메시지만 남아 있었다.

낮12시경이었던 이 순간 인도네시아 백화점의 방화와 대형 인명피해 소식을 들었다. 마침 콤파스지의 마룰리 토빙 기자와 한 여기자가 사망자들이 안치된 칩토 만군쿠스모병원으로 간다며 동행할 것을 제의했다.

부검이 가능한 이 국립병원에는 화재현장의 모든 시신이 모여들고 있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시신들에서 나는 숯냄새 속에 “3백구의 시신이 도착할 것”이라는 경찰의 말을 듣고 엄청난 사망자 수에 경악했다.

오후 4시경 인도네시아 기독교단체의 한 관계자를 만나 그와 함께 화재 대참사가 발생한 족자백화점으로 갔다.

91년 개장한 이 건물은 3층까지가 백화점, 4층은 디스코테크, 5층은 영화관이었다. 백화점 건너편 철길 너머로 처참한 빈민촌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소방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는 가운데 어린이들이 깨진 쇼윈도와 매장에서 쓸만한 물건이 있는지 뒤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외국기자를 보자 천진하게 ‘V’자를 그려보였다. 순간 눈물이 왈칵 솟았다.

화재 진화 끝에도 약탈은 계속됐지만 경찰과 군의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자카르타〓김승련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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