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기술자’ 이근안 88세로 사망…마지막까지 사과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26일 20시 02분


이근안 전 경감. 사진 뉴시스
이근안 전 경감. 사진 뉴시스
1980년대 군사정권 당시 ‘고문 기술자’로 불리며 국가 폭력의 상징적 인물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 씨(88)가 25일 숨졌다. 이 씨는 2023년 부인과 사별한 뒤 최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요양병원에 입소한 상태였다.

1970년 7월 순경으로 경찰에 입직한 이 씨는 이후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일했다. 1980년대 공안 사건을 수사하며 전기·물 고문 등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 1985년에는 고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민주화 인사들을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 강제 감금하고 고문했다. 김 전 장관은 평생 고문 후유증을 앓았고, 역시 이 씨에게 고문당했던 납북 어부 김성학 씨는 장애인이 됐다. ‘남영동 1985’ 등 군사정권 시대를 다룬 영화에 등장하는 고문 수사관은 그를 모티브로 삼았다.

1981년 간첩 조작 사건인 이른바 ‘학림사건’으로 체포돼 이 씨에게 고문을 당했던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전 의원은 26일 통화에서 “이근안이 진실로 사과를 했다면 본인도 구원을 받았을 것이고 피해를 입었던 여러 사람들의 응어리 진 한도 많이 풀렸을 것”이라며 “그래야 역사의 화해가 되는 것인데, 그가 마지막에 그런 길을 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그는 관절 뽑기, 전기 고문 등 악랄한 고문 수법을 사용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실명을 감췄다. 대신 ‘박 중령’, ‘불곰’ 등으로 불렸던 이 씨는 1988년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이름과 얼굴이 알려졌다. 이후 수배 대상이 된 이 씨는 우편으로 사표를 낸 뒤 잠적했다. 11년의 도피 뒤 1999년 자수했고 이듬해 고문죄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됐다.

2006년 출소 후 개신교 목사가 되며 종교 활동에 나섰지만 2012년 목사직에서 면직됐다. 그는 2012년 회고록 출판기념회에서 “그때는 사상범을 잡는 게 애국이고 나라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다. (고문 피해자를) 쥐어박으면 안 되는데 그게 내 잘못”이라고 해 공분을 샀다.
이 씨의 사망 소식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날 논평을 통해 “고문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며 “죽음은 그가 저지른 만행을 지울 수 없으며, 민주주의 역사에 새겨진 피해자들의 고통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근안#고문 기술자#군사 정권#민주화운동#남영동 대공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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