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살때 환율 1500원 넘었다]
유학생-주재원 등 고환율 직격탄
“유학비 이외 생활비용 절반 줄여”… 주재원 “한국서도 안한 김장한다”
여행객들 “돈 아끼려 편의점 이용”… 달러예금-보험엔 뭉칫돈 몰려
공항서 달러 살때 1537원
25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 소재 환전소에 주요 환율 시세가 표시돼 있다. 이날 1달러를 사려면 1537원이 필요했다. 인천=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1. ‘기러기 아빠’ 백모 씨는 지난해 자녀를 미국 보스턴의 한 대학에 입학시켰다.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이 미국 대학 새 학기가 시작된 지난해 9월 평균(1333.8원)보다 10%가량이나 올랐다. 이대로 내년 봄학기가 오면 지출이 작년 학기 초 1억5000만 원대에서 1억7000만 원대로 커지게 생겼다. 백 씨는 24일 기자에게 “내년에는 아들에게 군대를 가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2. 미국 뉴욕의 주재원 송모 씨도 이날 통화에서 “체재비는 달러로 나오지만 월급은 원화로 받고 있다. 월급을 달러로 환전하려면 1500원의 고환율이 버겁다”면서 “주재원 초기 즐겨 하던 외식은 못 한 지 오래고, 한국에서도 안 하던 김장을 하며, 난방비 폭탄이 무서워 춥게 산다”고 털어놨다.
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72.4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달러 소비자’가 달러를 살 때 환율은 이보다 비싸다. 이날 인천국제공항에서 원화를 달러화로 환전할 때 환율은 오후 3시 반 기준 1530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 창구에서 달러를 살 때도 환율 우대를 적용받지 않을 경우 1500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 시중은행 영업점에서도 1500원 넘는 환율
인천국제공항에 환전소를 보유한 KB국민·우리·하나은행의 이날 ‘인천공항 원-달러 환율’은 평균 1536원으로 파악됐다. 은행의 인천공항 출장소는 연중무휴(365일) 환전 영업을 하는 특수성 때문에 일반 영업점보다 높은 환율(매매 기준율 대비 4.2% 부가)을 적용한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이날 달러화를 살 때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00원을 넘어섰다. 일선 은행 영업점에서 달러를 사고팔 때는 영업 비용이 반영돼 매매 기준율 대비 1.75%가 가산된다. 은행에 따라 20일 또는 21일 달러를 살 때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선 뒤 등락을 계속하고 있다. 환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이 발표된 4월에 1500원을 돌파한 바 있는데, 7개월여 만에 다시 치솟은 것이다.
비싼 달러 값에 미국 여행객이나 유학생, 주재원들은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보스턴의 한 취업박람회를 찾은 대학생 강모 씨는 “9월 숙소를 예약할 때만 해도 ‘캡슐호텔’이 5박에 80만 원대였는데, 최근 현장에서 결제하니 90만 원이 나갔다”며 “남은 기간 지출을 예산에 맞춰 쓰려고 편의점에서 2달러짜리 커피-머핀 세트로 연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자녀와 배우자에게 주기적으로 달러를 보내던 이모 씨는 “학비 같은 고정 비용 외에 생활비는 5만 달러에서 2만7000달러(약 4000만 원)로 절반가량 줄였다”고 전했다. 미 주재원 박모 씨는 “다음 달 동생 결혼식에 참여할 겸 연말을 즐기려고 가족 모두 한국으로 귀국하려 했는데 환율과 항공운임료 인상 등으로 4인 가족 기준 항공료 부담이 200만 원 이상 커져 혼자만 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 환율 오르자 불붙는 달러예금
환율 고공 행진에 외화 자산에 대한 수요는 다시금 불붙고 있다. 5대 은행에서 달러 예금은 21일 기준 613억 달러(약 90조2581억 원)로 전월 말 대비 40억 달러가량 증가했다. 전년 11월 말(604억 달러)보다도 많다. 달러 예금은 9, 10월 감소세를 보였는데 환율이 치솟은 이달 들어 다시 늘었다.
달러 보험도 급증하는 추세다. 5대 은행의 달러 보험은 올해 들어 11월 21일까지 1조5526억 원이 팔렸다. 판매액이 이미 전년도 전체(9568억 원)보다 많았다.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엔화도 마찬가지다. 엔화 예금은 21일 1조916억 엔(약 10조2541억 원)으로 전월 말(1조477억 엔) 대비 439억 엔 불었다. 전년 11월 말(1조1112억 엔)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올해 들어서는 최대치다.
환율이 오르지만 해외여행은 늘며 국내 거주자들이 3분기(7∼9월)에 해외에서 이용한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합계 결제액은 59억2900만 달러(약 8조7000억 원)로 역대 최고치였다. 지난해 3분기(57억800만 달러)보다 3.9% 늘었다.
은행 관계자는 “원화 자산 가치가 떨어진다고 보는 고객들이 달러나 엔화 같은 기축통화 자산 축적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