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30년… 소탈한 아버지로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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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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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근 씨 MBC 민들레 가족서 ‘카리스마’ 벗고 家長역 열연

《“젊어서는 카리스마 있는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도 싫더라고요. 주위에서 카리스마, 카리스마 이야기만 하고 강한 역할 섭외만 들어오니까…. 지난해 ‘에덴의 동쪽’을 찍으면서 이제 강한 역할은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이방원’(용의 눈물) ‘연개소문’ ‘흥선대원군’(명성황후) 등을 연기해 ‘큰 인물 전문 배우’로 불리는 유동근(54)이 MBC 주말드라마 ‘민들레 가족’에서 이 시대 가장(家長)의 애환을 대변하는 아버지 박상길 역할을 맡았다. 1980년 TBC 공채탤런트로 데뷔해 연기 경력 30년인 그가 한 가정을 이끄는 아버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처음이다.》
“배우는 배역없으면 백수… 미래에 겪을 일 작품서 배워”
“전인화 씨가 매니저 역할… 시청률 낮아도 맡은역 충실”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던 박상길은 기대했던 사장 승진을 앞두고 비상임 고문으로 좌천된다. 정성 들여 키운 세 딸은 저마다 부모에게 골칫거리를 안긴다. 18일 경기 고양시 MBC 드림센터에서 만난 그는 “‘이제 연기는 다 졸업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세계’라는 숙제가 남아 있었다. 사극처럼 의상을 화려하게 입지 않아서 편하지만 생활적인 연기가 많이 필요해 실생활도 박상길처럼 하고 소탈해지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MBC 드라마 ‘민들레 가족’에서 세 딸을 둔 중년 가장으로 나오는 배우 유동근. 실제 고교 1학년인 아들과 2학년인 딸을 둔 그는 “극 중 이윤지가 연기하는 발랄한 막내딸의 모습이 실제 내 딸과 가장 비슷하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MBC 드라마 ‘민들레 가족’에서 세 딸을 둔 중년 가장으로 나오는 배우 유동근. 실제 고교 1학년인 아들과 2학년인 딸을 둔 그는 “극 중 이윤지가 연기하는 발랄한 막내딸의 모습이 실제 내 딸과 가장 비슷하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평생 연기자로 생활한 그가 샐러리맨이 겪는 아픔에 공감할 수 있을까. “월마트에서 일하던 상당히 능력 있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월마트가 신세계와 합병되면서 그 친구가 일이 잘 안 풀리더라고요. 저도 친구의 상처를 공감했기 때문에 이 역할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배우도 뭐 배역이 없으면 백수 아닙니까. 미래에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작품을 통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극 중 박상길의 아내인 김숙경 역할을 맡은 양미경은 남편의 승진을 위해 명절 때마다 상사의 집에 만두를 곱게 빚어 보내며 헌신적인 내조를 한다. “(실제 아내인) 전인화 그 사람도 남편이 직장생활을 하는 임원이었다면 숙경이처럼 했을 여자예요. 지금은 같은 배우로서 중요한 장면은 서로 대화를 맞춰주고 작품에서 실패했을 때에는 옆에서 매니저처럼 받아주고 그럽니다.” 이번 작품을 본 아내는 “성실한 가장의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민들레 가족을 쓴 김정수 작가는 ‘전원일기’ ‘그대 그리고 나’ ‘행복합니다’ 등 가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따뜻한 드라마를 많이 썼다. 쓰는 작품마다 인기였지만 이번 드라마는 시청률이 5∼6%대로 저조하다. 같은 시간대 경쟁작인 KBS의 ‘수상한 삼형제’는 30%대 후반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유동근이 출연한 대부분의 드라마도 히트를 쳤고 이번처럼 한 자릿수대 시청률에 머문 것은 이례적이다.

“시청률이 높으면 만드는 사람들이 더 신나게 일할 수 있겠죠. 하지만 시청률이 낮더라도 배우와 시청자가 위안을 받는 작품 속의 공간이 있어요. 영화도 1000만 관객 영화가 있는 반면 200만 관객이라도 좋은 영화라고 인정받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입소문이 나서 300만, 500만이 되는 거죠. 저쪽(수상한 삼형제)은 축하해주면 되고 우리는 이 작품에서 각자가 맡은 배역에 충실하면 돼요.”

최근 10대∼20대 초반의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이 드라마에 자주 출연해 연기력 논란을 겪는 것에 대해서는 “가수든 개그맨이든 누구든지 연기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이 배우라는 호칭을 가질 순 없을 것이다. 연기는 집중된 훈련 속에서 거듭나야 한다. 지금 그들의 연기는 격려해줄 수는 있지만 배우라는 호칭은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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