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개막작 '흑수선' 20대 취향 액션, 40대 정서 멜로

  • 입력 2001년 11월 11일 18시 34분


‘1980년대 정서’에 21세기식 액션과 특수 효과를 입히면 어떤 블록버스터가 될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9일 첫선을 보인 ‘흑수선’이 바로 이런 영화다. ‘흑수선’은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등으로 80년대 흥행사로 꼽혔던 배창호 감독이 대중적 취향을 겨냥해 만든 첫 블록버스터다.

제작비만 43억원이 들어간 이 영화는 안성기 이미연 이정재 정준호 등 호화 캐스팅과 감독의 명성에 힘입어 개막작 관람 티켓 3500여장이 2분 28초만에 예매가 끝났을 만큼 관심을 모았던 작품. 김성종의 소설 ‘마지막 증인’이 원작이다.

‘흑수선’은 연쇄살인사건을 뒤쫓는 젊은 형사(이정재)의 눈을 통해 남로당 스파이였던 손지혜(이미연)와 머슴이었던 황석(안성기)간의 50년에 걸친 슬픈 사랑과 전쟁의 아픔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미스테리로 담아냈다.

‘흑수선’의 영상은 유려하다. 특히 142m나 되는 긴 흔들다리 위의 추격씬과 대나무 숲에서 벌어진 총격전, 거제도 포로 수용소 탈출 장면 등 영화 곳곳에서 배 감독의 관록이 배어 난다.

전체적인 짜임새는 묵직하고 템포도 느린 편으로 경쾌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요즘 영화와 크게 다르다. 흥행의 기반이 되는 20대를 겨냥해 멋진 액션과 볼거리, 멜로 요소로 가미했으나 실제로는 요즘 20대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한 예로 기진맥진해 있던 손지혜가 황석이 입에 넣어준 머루를 먹고 벌떡 일어나 “오빠! 바위틈을 뚫고 피어나는 저 꽃의 강인한 생명력을 봐”라고 말하는 등 영화 전반에서 풍기는 ‘80년대 정서’를 요즘 20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또 ‘엽기적인 그녀’류의 속전속결식 사랑법에 익숙한 20대들에게, 한국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에서 희생을 감내하며 50년을 지켜온 두 남녀의 ‘은근한’ 사랑 이야기가 얼마나 절실하게 먹힐지도 의문이다.

70대 노인들의 분장이 50대로 밖에 보이지 않는 점도 어색하다.

‘흑수선’은 최근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진지한 주제를 흥미진진한 미스테리에 녹여냈음에도 ‘배창호’라는 이름때문에 ‘범작’ 이상을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을 남길 듯 하다. 16일 전국 개봉.

<부산〓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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