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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29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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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의 양기선 PD가 등장하자 녹화장 안에는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짧은 스포츠 머리에 날카로운 눈매의 그를 향해 개그맨들은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서며 “안녕하세요”를 외친다.
리허설은 매주 월요일 공개 녹화 이전에 진행하지만 실제 상황과 다름없다. 양 PD가 호명한 팀은 동료 개그맨과 작가들 앞에서 치르는 ‘실기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 첫 번째는 ‘갈갈이 삼형제’. 개그맨 박준형이 큰 앞니로 수박 껍질을 벗긴 뒤 수박 마차를 만들어 보이자 주위 개그맨들의 감탄과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어 ‘수다맨’ 강성범이 속사포같은 말솜씨로 다이어트 비법을 늘어놓는다. 다양한 다이어트 사례들을 손수 정리해왔다는 그는 노트를 힐끔힐끔 훔쳐보면서도 복잡한 대사를 거의 틀리지 않았다.
‘동물본부 24시’의 심현섭은 “일본 후지산의 원숭이 구라까다 야마도네가 독도에 관광 리조트를 조성한다며 사기치다 암탉들에게 몰매를 맞고 신주쿠 전철역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고 말한 뒤 원숭이가 죽는 과정을 몸짓으로 재연했다.
차력 시범 코너인 ‘킹콩과 제인’에서 신인 조경훈은 다리를 이용해 각목을 부러뜨리는 행위를 수차례 시도하다 각목이 부러지지 않아 다리에 피멍이 크게 맺혔다. 조경훈은 “어떻해서든지 리허설에서 ‘웃음’을 인정받아야 하므로 어쩔수 없는 일 아니냐”며 다리를 절룩거렸다.
양 PD는 12∼13개의 코너 시연을 지켜보며 박장대소 하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줄이고 빼라”를 지시한다. 해당 개그맨들이 “그게 아니라…”라고 말대꾸라도 할라치면 “말이 많다”는 한마디로 끝난다.
사전 리허설에서 합격점을 받았다고 안심할 수 없다. 설사 녹화장에서 객석의 재미를 얻지 못하면 편집에서 잘리기 때문이다. 50분 방송에 통상 60∼70분 정도를 촬영하므로 객석의 반응에 따라 일주일간 준비한 코너가 몽땅 사라지기도 한다.
1999년 10월 시작된 ‘개그콘서트’가 평균 22∼23%대 시청률을 유지하는 등으로 ‘공개 코미디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원동력은 50분 방송을 위해 5∼6일을 준비하는 출연진과 제작진의 ‘팀워크’다.
양 PD는 “재미를 위해서는 선의의 내부 경쟁을 끊임없이 유발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면서도 “출연진들이 웃음 개발을 위해 가족처럼 똘똘 뭉쳐 있는 것도 우리 프로그램 만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개그…’는 11월 가을 개편부터 10분이 늘어나 60분 방송 되며 박성호의 ‘뮤직 개그’와 심현섭의 ‘사이비 교주’ 코너 등을 추가해 ‘웃음의 강도’를 높일 계획이다.
▼아이디어 회의 이런일도-"옳다꾸나!"는 좌충우돌 농담 속에 캔 '진주'▼
매주 월요일 녹화가 끝나면 화 수요일 이틀간 개그맨 PD 작가들은 아이디어 회의에 골몰한다. 장덕균 등 5명의 작가들은 ‘가볍게 가다가 막판에 폭발하는’ 웃음 공식에 맞춰 아이디어를 나눈다. 다른 코너의 개그맨도 ‘앞 코너가 잘돼야 내 코너도 산다’는 공동체 의식 때문에 남일처럼 여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들은 농담중 만들어지기도 한다. 강성범과 김준호의 ‘환장하것네’ 코너는 습관처럼 쓰던 말이 유행어가 됐고, ‘꽃봉오리 예술단’의 노래 도중 감탄사로 나오는 “옳다꾸나!”도 개그맨 박성호가 얼떨결에 말한 게 고정된 것.
‘봉숭아 학당’의 강성범은 처음에는 썰렁한 반응 때문에 고생하다가 북한 사투리의 달인인 김지선에게 교육받고 ‘돌팔이 약장수’같은 캐릭터를 선보이며 ‘대박 스타’로 떠올랐다. 촬영 현장에 강성범이 나오면 객석의 환호 때문에 촬영이 중단될 정도다.
출연진의 연령차는 무려 15년이다. 최고령 김미화(38)를 비롯해 서른셋 동갑내기인 이병진 이태식이 ‘노땅 3인방’이고 “수다맨! 도와줘요”를 외치는 김지혜(23)가 최연소다.
<황태훈기자>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