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판유걸 『TV 잠깐 나왔다가 얼떨결에 스타로 』

  • 입력 1999년 3월 30일 19시 11분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에, 정말 좋겠네.』

방송출연의 ‘염원’을 담은 ‘유사(類似)동요’의 한 토막. 지난해 10월26일 1백70㎝, 55㎏의 평범한 고교1년생 판유걸(18·判有杰)이 이 노래처럼 TV에 나왔다. 그리고 인생이 달라졌다.

그가 재학중인 경기 일산 대진고에서 열린 청소년 프로 SBS ‘기쁜 우리 토요일―영파워 가슴을 열어라’. 판유걸은 ‘댄스그룹 이름아니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특이한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를 갖고 참가했다. 그동안 스트레칭 겸 재미삼아 했던, 양손을 번갈아 하늘로 치켜올리면서 상체를 앞으로 쭉 내미는 특이한 동작에다 전국에 2백여명 밖에 없다는 희귀성(姓·해주판씨)까지 한몫해 그는 단박에 스타로 떠올랐다.

그리고 5개월. 출세작 ‘영파워…’에 ‘고민해결사’로 고정출연. ‘마이걸’ 등 PC통신 팬클럽회원 15만명. 1주일전부터는 콜라와 라면광고, 4월1일부터는 SBS FM라디오‘김진표의 야간비행’에 고정게스트. 급기야 학교생활을 ‘펑크’낼 정도로 영파워를과시하게 됐다.

모든 프로에 교복을 입고 출연할 만큼 건전하고 평범한 학생이라는 이미지가 10대 시장의 새로운 ‘상품’으로 자리잡은 것. 모두들 반질반질, 영악해 보이는 10대 스타 속에서 유독 어수룩한 것 같은 판유걸의 외모, 친구들의 ‘고민해결사’역할을 해주는 착하고 진지한 느낌이 ‘벼락 인기’에 큰 몫을 했다.

“물론 제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죠. 어릴적부터 브라운관을 망치로 깨서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방송에 관심은 많았지만 녹화 때는 멋모르고 (옥상에) 올라갔거든요.”

‘얼떨결’. 판유걸은 방송생활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만큼 아역때부터 극성엄마나 매니저에게 ‘키워졌거나’ 반듯한 외모와 끼 덕분에 발탁된 또래 스타와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다.

매니저도 올해 초 난데없이 붙었고 광고출연도 어느날 집에 와보니 결정됐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삶과 행동반경이 결정되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미디어의 가공할 위력을 그린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이 되는게 아닌가 싶어지기도 한다.

유명세를 타고나니 생활패턴도 1백80도 변했다. 인기 외에 얻은 것은 약간의 돈과 스트레스. 잃은 것은 자유와 체중(3㎏)이다. 수업시간에 깜빡 졸아도 “공인이 그래서 되느냐”는 교사의 구박이 돌아온다.

그러나 ‘TV키드’ 판유걸은 TV의 거품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일가견을 지니고 있었다.

“학생답게 착실해보이는 이미지가 내년까지라는 걸 저도 알아요. 치솟은 인기가 단박에 떨어질 수 있고 그것이 얼마나 허무하다는 것도…. 이왕 방송에 뛰어든 이상 개그와 연기를 넘나드는 신동엽 형처럼 되고 싶습니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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