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영화]폭탄둘러싼 남북첩보물「쉬리」

  • 입력 1999년 2월 12일 20시 13분


한석규가 출연했대, ‘은행나무 침대’팀이 만들었대, 분단을 소재로 한 첩보영화라나… 소문만 무성했던 영화 ‘쉬리’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시사회장의 반응만 살핀다면 올 설 흥행1위는 ‘쉬리’가 차지할 것이 틀림없다.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부지런히 따라간 총싸움과 특수효과, 스펙터클에 남자들은 “우리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감탄했고 여자들은 짠한 멜로 터치에 눈물을 훔쳤다.

액션에, 멜로에, 미스터리 성격까지 가미해 폭넓은 관객의 감정선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영화제목은 한반도 맑은 물에서만 사는 토종 담수어에서 따왔다. ‘조국통일 만세’를 외치는 북한 특수부대의 작전명이기도 하다.

유중원(한석규 분)은 국가 일급 비밀정보기관의 특수요원이다. 북한 특수8군단 소속 저격수 이방희가 귀신같이 우리 정부요인들을 암살하는 가운데(여기까지는 미스터리다. 과연 이방희는 누구인가?) 8군단 박무영(최민식)과 정예부대가 남한에 침투, 신소재 액체폭탄 CTX를 탈취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백화점 시가지 잠실구장에서 불꽃튀는 총격전(액션!). 여기에 묘한 슬픔을 지닌 여자(김윤진)와 유중원의 사랑이 얽혀지고(눈물이 배어나는 멜로)….

이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27억원의 제작비, 시나리오 작업 3년, 촬영기간 6개월, 촬영필름만 국내영화 평균치의 두배를 넘는 13만자, 엑스트라 3천여명 같은 ‘사이즈’가 아니다.

“촬영하고 싶은 곳에서 찍지 못하면 병이 난다”고 할 정도의 집요함으로 파고든 강제규감독과 출연 제작진의 용기와 정성, 새로운 시도는 눈여겨봄직하다. “북한의 기아참상을 접한 뒤 분단 현실과 통일 문제를 액션첩보영화로 형상화하고 싶었다”는 것이 강감독의 말.

디테일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리얼리티에 못미치는 것은 접어두더라도 분단 극복의 단초를 남남북녀(南男北女)의 사랑으로 가볍게 잡은데서는 잘만든 상업영화의 한계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리’는 21세기를 앞두고 한국영화의 새 지평을 여는 작품으로 평가할만 하다. 우리도 이만한 영화를 가질 때가 되었다.

〈김순덕기자〉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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