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갑 김동건씨]마이크앞서 35년째…「가요무대」 6백회

  • 입력 1998년 7월 12일 20시 18분


중장년 세대에게 가장 친근한 방송 진행자인 아나운서 김동건(60). 그에게 올해는 매우 특별한 해다.

아나운서 생활이 올해로 35년째. 게다가 13년동안 진행한 KBS ‘가요무대’가 13일로 방송 6백회를 맞는다. 빠르게 변하고 쉽사리 포기하는 요즘의 세태. 그러나 그는 강산이 세 번도 더 바뀌었을 30여년동안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현장을 지켜온 유일한 아나운서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오래하게 된거지 작정했던 건 아니예요. 처음엔 딱 3년만 하려고 했는데…. 거 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보면 하루를 묘사한뒤 맨끝에 ‘이반 데니소비치는 10년을 이렇게 살았다’고 나오잖아요. 나도 마찬가지죠, 뭐.”

63년 동아방송 개국요원으로 방송생활을 시작했다. ‘여기는 동아방송입니다’하는 콜사인으로 첫 방송을 한 이후 TBC, KBS에서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편안하면서도 품격있는 진행자의 위치를 굳혔다.

70년대말 하이틴 프로 ‘우리들 세계’를 진행할 때는 청소년 스타였고 10년동안 진행한 ‘11시에 만납시다’에서는 초대손님 2천여명의 흉금을 털어놓게 만든 명 인터뷰어였다.

70,80년대 초반 사회교양 프로의 MC로 이력이 나서인지 그는 처음 ‘가요무대’MC 제안이 왔을 때 “쇼 프로 MC는 곤란하다”고 거절했다. “그런데 하루는 조의진PD(현 KBS TV2국장)가 찾아오더니 다짜고짜 ‘오늘 첫 녹화고 형님이 안하면 펑크나는데 어떻게 할거냐’고 하는거예요. 그래서 딱 한 번만 하겠다고 약속하고 무대에 섰는데 이건 무용단이 난리치는 기존 쇼하고는 다르더라구요. 이런 프로라면 한 번 해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가 보는 ‘가요무대’에는 전쟁과 격변을 치러내며 우리 민족이 받아온 상처와 한, 그것을 노래로 풀어내려는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리비아 사할린 옌볜 등 세계를 돌며 진행했던 ‘가요무대’ 해외공연에서 절감했습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공연이 끝나도 갈 생각을 하지 않고 무대 뒤로 찾아와 손 잡아주고 떡 만들어 갖다주는 동포애를 접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요.”

5년전 프리랜서로 독립한 그는 올해 환갑을 맞았지만 아직도 ‘병원에 가면 의사를 해보고 싶고, 사기당한 사람을 보면 형사가 되고싶은’, 의욕이 넘치는 사람이다.

늘 차분한 인상이지만 의외로 그가 가장 즐기는 것은 드라이브. 밤11시반에 자녀들과 함께 집에서 나와 올림픽대로 중부고속도로 용인에버랜드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집에 돌아올 때까지 1시간반쯤 걸리는 코스를 좋아한다. 그런 재미도 프로골퍼인 아들이 일본에 가버리고 디자이너인 딸이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면서 요즘은 시들해졌다.

생각해보면 참 긴 35년. 80년대, 학생들을 용공으로 모는 특집프로처럼 내키지 않은 방송을 할 때에는 가슴이 아팠지만 시청자들이 큰 흠 잡지 않고 사랑해줘서 행복하단다. 미국의 ‘쟈니 카슨 쇼’같은 토크쇼를 한 번 해보고 싶지만 크게 욕심내지는 않는다.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할 거냐고 묻자 정색을 하며 이렇게 답했다.

“언제까지 할지 나도 몰라요. 다만 시청자들이 ‘저 사람 왜 또 나왔냐’할 때까지 TV에 나오면 되겠어요? 그거 안되죠.”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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