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참여 라디오프로, 『살기 어렵다』 IMF편지 봇물

  • 입력 1998년 2월 11일 07시 34분


주부들의 편지로 구성되는 라디오프로엔 사회 변화가 굴절없이 반영된다. 요즈음 MBC‘여성시대’에 쏟아지는 하루 2백여통의 편지 중 80%이상, SBS ‘안녕하십니까 강부자 강석우입니다’의 절반 이상이 국제통화기금(IMF)시대와 관련한 ‘눈물나는’ 얘기들이다. 고부갈등 사랑 등의 ‘전통적 주제’들은 대폭 줄었다. 제작진에 따르면 “살기가 너무 어려워진다” “남편 직장이 위태롭다”는 편지가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IMF한파가 몰아닥치기 훨씬 전인 지난해 봄부터. 주부들이 정부 당국자들보다 경제대란의 징후를 실생활에서 더 빨리 느꼈던 모양이다. 내용뿐만 아니라 ‘포장’도 달라졌다. 예전엔 봉투에 꽃을 달거나 고급 분홍색 편지지를 쓴 편지가 많았지만 요즘엔 달력종이, 광고전단 뒷면에 써 보내는 ‘IMF형 편지’가 상당수다. 상품이나 사례를 겨냥한 편지도 30% 가량 늘었다. ‘안녕…’의 경우 “제 편지를 꼭 채택해서 선물 중에서도 장식장을 보내주세요”라고 솔직히 부탁하는 편지도 있다. 아예 보내는 사람 이름을 아들 딸 시어머니 등으로 차례로 바꿔 보내는 단골 꾼도 10여명에 이른다. 물론 IMF가 몰아닥치든 아니든, 글만 봐도 ‘선량한 눈매의 고운 심성’이 그대로 떠오르는 편지가 압도적이다. 손숙 강부자 등 관록있는 진행자조차 방송도중 목이 메는 경우가 비일비재이다. 이들 프로에 편지가 방송되려면 최소한 2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통과해야 한다.‘여성시대’의 정찬형PD, ‘안녕…’의 이정은PD가 말하는 ‘편지 채택 조건’은 첫째 솔직해야 한다는 것. 꾸몄다는 냄새가 조금만 나도 탈락이다. 지어낸 얘기는 바로 표가 난다. 관념적 내용, 수식어구가 많은 화려한 문체도 감점요인. 반면 맞춤법이 틀린다거나 문장구성력이 떨어지는 등 기술적 결함은 거의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청취자 입장에선 의문이 남는다. 기승전결의 문학적 구조와 적절한 비유 등 일류 문인들의 작품을 뺨치는 편지가 한둘이 아닌데 혹 전문작가들이 가필하고 재구성하는 것은 아닐까. 이같은 의문에 대해 제작진은 “가필은 있을 수 없다”고 펄쩍 뛴다. 맞춤법, 거친 표현, 문맥 전달에 어려움이 있는 부분 등을 고치긴 하지만 그야말로 교정을 보는 수준이라는 것. 정PD는 “인기 진행자들의 감칠맛나는 목소리에 담기니까 빼어난 글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나중에 책으로 펴낸 걸 읽어보면 문장은 엉성한 게 많다”고 고백한다. 또 상당수 주부들의 표현력이 쓴 사람 스스로도 놀랄 만큼 뛰어나다는 설명도 들린다. 주부들의 글은 몇년 혹은 평생을 걸려 ‘취재’한, 삶에서 우러나온 구체적 체험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 하지만 방송가 주변에선 “일부 프로의 코믹한 편지는 상당부분 가필한다”는 얘기가 떠돌고 있으며 경쟁사 프로에 대해선 “좀 고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하는 PD도 없지 않다. 〈이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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