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委, TV영화 심의 『고무줄 잣대』

  • 입력 1997년 6월 17일 18시 42분


영화「크라잉 게임」
영화「크라잉 게임」
『「졸업」은 안되고 「양들의 침묵」은 된다』 『어린이 청소년 시청불가 영화를 밤8시에 방송하면 안되고 오후4시에는 방송해도 된다』 『케이블TV 영화채널은 한국 영화를 70%이상 방송해야 하고 공중파TV는 외화만 100% 내보내도 된다』 현재 TV영화와 관련된 이상한 규제와 심의의 단면들이다. 최근 방송위원회 영화심의위는 KBS가 신청한 영화 「졸업」을 방송불가로 판정해 논란을 빚었다. 주인공(더스틴 호프먼)이 모녀와 관계를 맺는 설정이 우리 전통윤리에 위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 그러나 KBS측은 『수십년전 아카데미상을 받은 명작이고 극장가에서 신물나게 돌린 필름이며 선정적 장면도 거의 없는 「졸업」이 방송불가라는 건 이상한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더구나 인육을 먹는 범죄자가 등장하는 「양들의 침묵」은 몇 장면을 삭제한 채 방송될 수 있고 「졸업」은 안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 영화관계자들의 반론이다. 「양들의 침묵」은 지난해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으나 심의위원이 바뀐 올해 재심에서는 몇커트 삭제조건으로 번복돼 심의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방송사들은 일단 방송불가 판정을 받더라도 심의위원이 달라지는 때를 기다려 얼마후 재심을 신청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일반화」돼 있다. 게다가 「결혼피로연」 「크라잉 게임」 등 각종 영화제 수상작들마저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TV영화와 관련된 제도적 불합리는 이뿐 아니다. 케이블TV는 청소년들의 시청을 제한하는 아무 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단지 「유료채널」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중파보다 선정성과 폭력성이 강한 영화들을 밤낮으로 돌리고 있다. 게다가 심의에서 「가족영화」 「어린이 청소년 시청불가 영화」 등 4개 등급으로 나누어지는 영화채널 DCN과 캐치원의 영화 가운데 오후6시∼밤10시만 「가족시간대」로 규정돼 방송이 제한되고 오전6시∼오후6시 사이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어 청소년 시청불가 영화까지도 방송되고 있다. 케이블TV측도 불만은 있다. 한국영화를 70% 방송하라는 규정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며 게다가 공중파TV에도 없는 불공평한 규정이라는 것. 종합유선방송위원회 홍순권 영화부장은 『방송법 개정과 함께 공중파와 케이블TV를 포괄하는 통합방송위원회가 구성되면 불합리한 규정들은 사라져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공중파와 케이블 영화 모두 등급제로 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심의와 관련된 논란이 계속되자 방송위원회는 최근 방송3사의 영화부장들을 불러 간담회를 갖고 『TV영화에 대해 위원회의 사전심의를 줄이고 방송사 자율심의를 늘리는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 제작 TV프로는 방송위의 사후심의를 받고 있으며 영화와 수입 프로, 광고만 사전심의를 받고 있다. 방송위의 「전향적 태도변화」에는 극장영화에 대한 사전심의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위 김창열 위원장은 『자율과 규제완화 정착이 방송의 나아갈 방향』이라며 『영화 사전심의를 방송사 심의실에 위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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