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를 찾은 운전자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2026.05.06 서울=뉴시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 4사가 1분기(1~3월) ‘조 단위’의 깜짝 실적을 내놨다. 정유 4사의 영업이익을 모두 합치면 6조 원 수준이다. 이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며 정제마진이 극대화된 결과다. 하지만 전쟁 기간 원유를 비싸게 수급해 온 만큼 유가가 다시 떨어질 경우 손실이 가중될 수 있다.
● 정유사 ‘6조 원’ 어닝서프라이즈
13일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는 잇따라 1분기 실적을 공개했다. SK이노베이션은 영업이익 2조1622억 원에 달하는 성적표를 내놨고,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의 영업이익도 각각 1조6367억 원, 9335억 원으로 3사 모두 전기 대비 적어도 2배에 이르는 영업이익을 냈다. 앞서 1조2311억 원의 영업이익을 발표한 에쓰오일까지 더하면 1분기 국내 정유 4사는 총 5조9635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이번 정유사 호실적은 이른바 ‘래깅효과(lagging effect)’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래깅은 원유를 구입한 시점과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시점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시차 효과’를 의미한다. 정유사가 산유국으로부터 구매한 원유가 한국에 도착하는 사이 원유 가격이 상승해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도 비싸지면 정제마진이 늘어난다. 반대로 원유 가격이 하락할 때는 비싸게 들여온 원유를 정제해 보다 저렴한 값에 휘발유 등을 팔아야 하니 마진이 준다. 국제유가가 원유 채굴 가격보다 높으면 반드시 마진을 얻는 산유국 석유회사들과 달리, 정제마진에 의존하는 한국 정유사들이 외부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 이유다.
국내 정유사들의 마진은 3월 본격화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으로 인해 국제원유 가격이 폭등하며 극대화됐다. 정부의 석유제품 가격 억제 정책인 ‘석유 최고가격제’로 인해 정유사들의 국내 석유제품 판매 이익이 크게 줄어들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이를 덮을 정도로 수출을 통한 이익이 컸다. 여기에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부진을 면치 못 하던 정유사들의 석유화학 자회사도 이란 전쟁 발발 이전 구매해 둔 나프타 가격 급등으로 래깅 효과를 얻어 실적 개선에 기여했다.
● 유가 하락기 손실 극대화 예상
하지만 정유사들은 이 같은 ‘깜짝 실적’에도 웃지 못 하고 있다. 이란 전쟁이 끝나고 다시 국제유가가 안정되는 국면이 돌아오면 유가 하락을 고스란히 적자로 떠안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평시라면 마진이 좋을 때 벌어들인 수익으로 손해를 상쇄했겠지만, 최고가격제로 국내 시장 공급가가 제한된 탓에 정유사들은 국내에서 손실을 보고 석유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진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현 시점의 가장 큰 변수는 최고가격제의 종료 시점과 손실 보전 규모”라며 “정부와 정유업계 간 손실 산정 기준을 둘러싼 협의가 진행 중인 만큼, 확정 내용에 따라 하반기(7~12월) 실적은 크게 바뀔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최고가격제 시행에도 정유사들이 큰 돈을 벌어들여 수혜를 입은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정유사들의 우려 중 하나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현재 정유사들은 현물 시장에서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에 원유를 들여오고 있다”며 “1분기의 막대한 영업이익을 사실상 지금 원료 조달에 다시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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