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던 우리를 키운 건 약 7000만 달러(약 1011억 원)의 투자금입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로봇 스타트업 ‘더스티 로보틱스’를 창업한 테사 라우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2월 16일(현지 시간) 회사를 키운 ‘혁신 금융’의 힘을 강조했다. 2018년 회사 설립 때부터 꾸준히 투자가 이어진 덕에 안정적인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투자자들은 당장 눈앞의 성과보다 잠재력을 꿰뚫어 보고 돈을 내놨다. 라우 CEO는 “첫 투자는 투자자들과 커피를 몇 번 마신 뒤 결정됐다”며 “내가 건설사업을 하며 새로 배운 점들을 얘기했는데, 투자자들이 우리의 점진적인 발전을 높게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이 기업은 미국 경제전문지 ‘패스트컴퍼니’가 2024년 선정한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 꼽혔다. 실리콘밸리의 기업가들은 혁신 금융가들이 스타트업의 실패를 이해해주고 실패를 통한 학습을 가치있게 여긴다고 소개했다.
●“여러 실패가 기업을 성장시켜”
더스티 로보틱스도 실패가 있었다. 2018년 창업한 뒤 건설 로봇이 샌프란시스코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해고됐다. 작동 오류로 바닥에 설계도를 직선 대신 곡선으로 그려냈기 때문. 이 기업은 로봇을 실시간 제어하는 데 와이파이가 적합하지 않다는 등의 한계점을 발견했고 이를 토대로 제품을 재설계했다. 이후 기술이 개선됐고 당시 로봇을 퇴출한 아파트 건설사도 다시 고객으로 돌아왔다. 라우 CEO는 “우리의 역사는 많은 실패로 가득차 있고 그 실패가 우리를 성장시켰다”고 회고했다.
더스티 로보틱스가 실패에도 버텨내고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VC) 생태계의 역할이 컸다. 투자자들은 단기적인 사업의 완성도나 손익보다, 이 기술이 실패를 거쳐 얼마나 빠르게 진화하고 결국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본다. 100개의 기업 중 99개의 기업이 실패하더라도 업계를 뒤흔들 1개의 기업을 찾기에 기업의 모험과 혁신을 지지한다는 설명이다. 이 회사의 잭 라이스 데이비스 수석 마케팅 디렉터도 “투자자들은 늘 ‘이 산업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회사들을 찾는다”고 말했다.
미국 대형 VC들은 처음 펀딩을 하고 2, 3년 동안은 수익화 여부를 묻지 않는다고 한다. 안준영 롯데벤처스 미국 지사장은 “벤처 펀딩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아서 4, 5년 만에 크길 바라는 건 큰 욕심”이라며 “한국 펀드들은 기준 수익률을 중시하는 반면 미국의 펀드들은 결국 나중에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며 조급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맨파워가 A급이면 B급 사업도 A+급으로 키운다”
데이터 분석업체 ‘디맨드세이지’(DemandSage)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미국 전역엔 114만8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운영되고 있다. 이 중 다수가 실리콘밸리에 집중돼 있다.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기업가치가 10억 달러(약 1조4455억 원)인 유니콘 스타트업은 약 105개 정도로 집계된다. 한국 전체의 유니콘기업(13개)의 8배나 된다.
실리콘밸리가 유니콘기업을 활발하게 배출할 수 있는 비결로 ‘혁신 금융’의 투자 공식이 꼽힌다. 대표적으로 혁신적인 투자자들은 사업 자체의 우수성보다 창업팀원들의 역량을 본다. 세계적인 벤처캐피털(VC) 세쿼이아(Sequoia)는 한 번 검증한 창업가를 ‘세쿼이아 패밀리’로 본다고 한다. 세쿼이아의 투자를 받은 유전자 치료제 개발 기업 ‘진에딧’의 박효민 대표는 “세쿼이아는 사업보다는 사람을 검증하고, (검증된 사람들인) ‘세쿼이아 패밀리’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며 “우리에게 스타트업이 망하더라도 ‘다음 창 때는 우리에게 제일 먼저 오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일리야 스트레불라예프 미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전설적인 한 벤처캐피털 투자자는 ‘나는 A급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B급 팀보다, B급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A급 팀에 투자하겠다. 왜냐하면 A급 팀은 B급 아이디어의 한계를 빠르게 파악하고, 방향을 바꿔 A+급 아이디어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국내 금융권이 혁신 산업 투자의 공식을 바꾸지 않으면 국내 창업 생태계는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인공지능(AI) 등 테마 분야가 아닌 플랫폼들에 대한 투자는 얼어 붙었다”면서 “과거에는 스타트업들에 글로벌 벤처캐피털들이 달라 붙었었는데, 최근에는 내수용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은 글로벌 투자를 받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