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호르몬 투약 조기 열풍, 괜찮을까?

  • 여성동아

“조기 투약은 ‘유전적 목표 회복’을 위한 선택일 뿐, 미용 목적 정당화할 수 없어”





최근 초등학교 1학년, 심지어 유치원생까지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히려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해야 키가 더 클 수 있다’는 불안과 ‘성장판이 금방 닫힌다’는 소문, 그리고 친구들보다 작아 보이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초조함이 결합하면서 성장클리닉 상담 대기가 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아이의 성장에는 분명한 의학적 기준이 있으며, 단순히 미용 목적으로 성장호르몬 치료가 사용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또한 가볍지 않다.

불안과 경쟁이 만든 ‘조기 투약’ 열풍

세브란스병원 김서정 교수는 “최근 진료실에 찾아오는 부모들의 연령대와 상담 요구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사춘기 무렵이나 또래보다 키가 현저히 작아 내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성장 효과를 최대한 보려면 일찍 시작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내원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더해 김 교수는 “성장호르몬 투약 기간이 길수록 효과가 잘 나타난다는 식의 오해가 성장호르몬 조기 투약 현상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한다. 반대로 인터넷에서 부작용 사례가 빠르게 확산하며 치료를 시작했다가 불안감에 중단 상담을 요청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고 한다. 기대와 공포가 뒤섞인 혼란 속에서, 부모의 선택에 의해 장기간 의약품 투여에 노출되고 있는 것은 바로 아이들이다.

‘저신장’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작은 키가 질병은 아니다. 반면 성장호르몬 결핍증, 터너증후군, 소아 만성신부전, 프레이더윌리증후군, 따라잡기 성장을 하지 못한 부당경량아, 누난증후군 등은 치료 필요성이 의학적으로 명확히 인정된다. 특발성 저신장처럼 호르몬 분비는 정상이나 작용 효율이 낮아 키가 잘 크지 않는 경우도 치료 허가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단순히 ‘또래보다 작은 키’라는 이유만으로 성장호르몬 치료를 결코 쉽게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용 목적 성장호르몬 사용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그런 용도를 전제로 한 안전성 연구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아이에게 장기간 약물을 투여하는 임상시험은 윤리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데이터는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아이들’에게서 나온 결과뿐이다. 그 자료를 기준으로 해도 전체 이상반응은 약 14%, 치료와 직접 관련된 이상반응은 약 3%로 결코 적지 않다. 주사 통증, 발적 같은 경미한 증상부터 두개내압 항진, 고혈당과 당뇨, 척추측만 진행, 대퇴골두 골단 분리증처럼 아이의 성장과 삶에 장기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부작용도 보고된다. 한국 연구에서도 12.5%의 이상반응, 1.2%의 중대한 부작용이 확인됐다. 무엇보다 이 수치는 모두 ‘치료 대상자’를 기준으로 한 결과라, 건강한 아이에게 미용 목적으로 투여할 경우 부작용 위험이 더 높아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많은 부모가 조기 투약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성장판이 닫히기 전에 시작하면 키가 더 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연구에서도 사춘기 이전에 투약하면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보이지만, 김 교수는 그 해석이 잘못됐다며 “사춘기 전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건 ‘더 큰 키’가 아니라 ‘충분한 치료 기간’ 때문이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부모의 신장으로 계산한 ‘목표 키’에 가깝게 회복시키는 과정일 뿐, 그 목표를 뛰어넘는 키를 만들어주는 시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조기 투약은 ‘유전적 목표 회복’을 위한 선택일 뿐, 미용 목적의 조기 투여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치료가 꼭 필요한 아이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연령·성별 기준으로 하위 3% 이하 저신장이거나, 연간 성장 속도가 연령 대비 하위 25% 미만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핵심 신호로 꼽는다. 특히 “연간 성장 속도가 4cm 미만이라면 반드시 원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치료가 확정되면 3~6개월마다 키와 체중, BMI 측정을 통해 성장 속도를 평가하고, 6~12개월마다 골연령 측정과 혈액검사로 호르몬 수치, 갑상샘·간·신장 기능, 혈당 등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김 교수는 또 “같은 치료라도 아이마다 반응이 다르고, 부모의 성장 패턴에 따라 예측 성인 키도 달라지기 때문에 개별 상담은 필수”라고 조언한다.

“성장호르몬은 만능 치료제 아냐”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는 치료 방식은 아이에게 통증과 스트레스를 주고, 비용 부담 또한 크다. 김 교수는 “꼭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먼저 수면의 질을 높이고, 단백질 및 무기질 섭취를 충분히 하며, 매일 30분 이상 유산소 운동을 하는 생활 습관 개선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면서 “치료가 필요해 시작한 아이에게도 단기간의 ‘극적인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강조한다. 1년 이후에는 성장 속도가 완만해지고, 유전적 한계로 인해 목표 키의 완전한 달성이 어려운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진료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부모들의 혼란을 가장 우려하며 “아이 키에 대한 걱정과 사회적 압박이 결합돼 불필요한 치료를 시작하고, 다시 부작용이 걱정돼 괴로워하는 부모들이 많다. 결국 그 부담은 아이가 고스란히 안게 된다”고 말한다. 성장호르몬은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중요한 의학적 도구지만, 더 큰 키를 얻기 위한 지름길이 될 수는 없다. 김 교수는 “지금 필요한 것은 불안을 내려놓고, 아이의 몸과 시간을 존중하는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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