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베이커리 ‘더 프렌치 바스타드(The French Bastards)’에서 열린 페기 구의 디제잉. @peggygou_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는 상황과 컨디션에 따라 의식적으로 술을 선택하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을 뜻한다. ‘취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는 소버(sober)와 ‘호기심’을 뜻하는 큐리어스(curious)의 합성어로, 불필요한 음주를 줄이고 술 없이도 관계를 이어가는 방식을 탐색하는 태도에 가깝다. 이 개념은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 루비 워링턴이 2018년 출간한 책 ‘Sober Curious’를 통해 대중화되었고, 이후 서구권을 중심으로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흐름과 결합하며 모닝커피 챗, 모닝 파티 등 새로운 사교 문화로 확장되고 있다.
소버 큐리어스가 하나의 트렌드로 퍼져나간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가장 큰 요인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숙면, 집중력, 정신적 안정 등 일상적인 컨디션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가 확산됐다는 점이다. 술 마실 시간에 자기 계발과 관리에 힘쓰는 이른바 ‘갓생(god+인생)’ 마인드 역시 이러한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소셜미디어의 역할도 컸다. 특히 틱톡을 중심으로 ‘술을 줄이게 된 이유’ ‘금주 후 달라진 일상’을 공유하는 콘텐츠가 빠르게 퍼지면서 소버 큐리어스는 도덕적 선언이나 현실적인 라이프스타일 옵션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요인은 음주 문화 자체에 대한 피로감이다. 과음이 전제된 만남 대신, 다음 날의 삶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욕구가 커진 것. 취하지 않아도 커뮤니티에 속할 수 있다는 경험이 쌓이면서 소버 큐리어스는 개념을 넘어 구체적인 장면들로 확장되는 추세다.
매주 오전 8시에 모여 커피를 마시거나 러닝을 하며 가볍게 교류하는 서울모닝커피클럽(SMCC). @seoulmorningcoffeeclub
술 없이도 충분히 이어지는 관계
‘서울모닝커피클럽’은 술 없는 사교가 어떻게 일상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2019년부터 이어져온 이 커뮤니티는 ‘알람보다 강한 약속’이라는 슬로건 아래, 매주 도심 속 카페에서 오전 8시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가볍게 교류하는 모임을 가지고 있다. 러닝을 비롯한 다양한 모닝 루틴을 제안하거나, ‘술 없이 아침을 즐기자’는 모토로 오전 7시에 카페에 도착해 약 3시간 동안 음악에 맞춰 춤을 즐기는 ‘커피 레이브’ 행사를 운영하기도 한다.
소버 큐리어스 문화는 파티의 형식 자체도 바꾸고 있다. 2026 S/S 파리패션위크 기간, 파리의 베이커리 ‘더 프렌치 바스타드(The French Bastards)’에서 열린 페기 구의 디제잉이 대표적이다. 술과 담배 연기, 어둠이 전제된 클럽 대신 빵 냄새가 가득한 공간에서 한낮에 커피를 들고 음악을 즐기는 방식은 파티 문화를 산뜻한 방향으로 재해석했다. 음악과 에너지는 충분했고, 파티는 더 가볍고 개방적인 분위기로 확장된 것이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사우나 소셜 클럽(Sauna Social Club)’은 술 없는 사교의 또 다른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우나와 아이스 배스를 갖춘 이곳은 몸을 돌보는 경험 자체를 사교의 중심에 둔다. 평일에는 ‘소셜 사우나 세션’을, 주말 밤에는 DJ가 함께하는 ‘앰비언트 익스피리언스’를 운영하며 술 대신 땀과 음악으로 연결되는 만남을 제안한다. 술 없이 충분히 깊어질 수 있는 관계, 그리고 다음 날의 컨디션까지 고려한 사교 방식이 이곳에서는 자연스럽다.
술 대신하는 음료 인기
무알코올 음료 역시 소버 큐리어스 트렌드의 확산과 함께 빠르게 진화하는 분위기다. 배우 톰 홀랜드와 공동 설립한 ‘베로(BERO)’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브랜드로 꼽힌다. 베로는 알코올 도수 0.5% 이하의 프리미엄 논알코올 맥주 브랜드로, 필스너부터 헤이지 IPA까지 4가지 스타일을 선보이며 ‘술은 안 마셔도 맛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F1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과 멕시코 증류 장인 이반 살다냐가 함께 만든 알마베(Almave)는 멕시코 할리스코 지역의 블루 웨버 아가베로 만든 세계 최초의 무알코올 아가베 스피릿이다. 테킬라와 동일한 원료를 사용하되 발효와 증류 과정을 거치지 않아, 풍미는 살리고 알코올은 제거했다. 국내에서 선보인 ‘카스 올제로’는 알코올, 당류, 칼로리, 글루텐을 모두 제거한 ‘4무(無)’ 콘셉트 맥주로, 점심 회식이나 운동 전후 등 일상 속에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술이 사교의 전제가 되던 문화에서 벗어나 맨정신으로도 사람들 사이가 충분히 연결될 수 있다는 경험이 쌓이면서 만남의 방식과 시간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낮에 음악을 즐기며, 술 대신 다른 매개체로 관계를 이어가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소버 큐리어스는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일상을 원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흐름은 사교의 기준 자체를 다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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