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규모 세계 최대 수준의 석유화학단지 ‘여수국가산단’(자료사진). 2024.10.23 여수=뉴시스
석유화학업계가 사업재편안 제출 시한인 19일을 하루 앞두고 막판 협상에서 진통을 겪었다.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인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기업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합의 도출에 난항을 겪었다. 정부의 구조조정 유인책이 미흡하다는 지적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의 자발적 사업재편 계획이 자칫 ‘맹탕’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 막판까지 진통, 석유화학 사업재편
18일 업계에 따르면 석유화학업체들은 이번 주 내에 산업통상자원부에 구조조정안을 제출해야 하지만 3개 주요 석유화학 산업단지별 협의가 막판까지 이어지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정부는 연간 270만~370만 t 규모 에틸렌 공급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으나, 업체 간 이견으로 자발적 사업재편안이 목표치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실제 지난달 26일 충남 서산 대산산업단지에서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1호 사업재편안’을 제출한 이후 후속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롯데케미칼과 현대케미칼의 사업재편안도 구체적인 감축 물량은 확정하지 않았다. 양사는 나프타분해설비(NCC) 공장 통폐합에 합의했지만 롯데케미칼 NCC 공장(생산량 110만 t)을 폐쇄할지, HD현대케미칼 NCC 공장(80만 t)을 폐쇄할지를 두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2호 사업재편안 제출이 유력했던 전남 여수산업단지의 여천NCC 역시 감축 규모를 두고 내부 이견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1~3공장 가운데 3공장(47만 t) 폐쇄가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대주주 중 하나인 DL케미칼이 1공장(90만 t) 또는 2공장(91만5000t) 폐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사업재편안이 미궁에 빠졌다.
같은 여수산업단지의 LG화학과 GS칼텍스도 NCC 공장 통폐합을 논의해왔지만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GS칼텍스 측이 통폐합의 대가로 LG화학의 주요 화학 사업 중 일부 매각을 요구했으나, LG화학이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울산 온산산업단지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 에쓰오일 등이 에틸렌 감축 협의를 진행 중이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특히 내년 상반기(1~6월) 이후 10조 원을 투자한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될 경우 연간 180만 t 규모의 에틸렌 추가 생산이 가능해진다. 이는 현재 울산 온산산업단지의 생산능력(176만 t)을 웃도는 것이다.
● 깜깜이 지원책에 ‘맹탕’ 우려 커져
업계에서는 구조조정을 통한 정부 지원이 불명확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공장 폐쇄 등 강도 높은 자구책을 내놓더라도 현재로선 이를 통해 회사가 얻을 수 있는 대가가 무엇인지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정부는 ‘선(先) 자구책, 후(後) 지원책’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제출된 사업재편안을 토대로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복수의 사업재편안이 제출되거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빠진 형식적인 구조조정안이 제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할 유인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최근 국회에서 석유화학업계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전기요금 감면 등 핵심 요구가 빠져 실질적인 유인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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