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피하자” 기업 EB 발행 2배로 늘었다

  • 동아일보

자사주와 바꿀 수 있는 교환사채… 작년 42건서 올해 94건으로 급증
금감원 “EB 발행 공시기준 강화”
당정 ‘자사주 의무소각’ 규제 앞두고… “주주 보호” “경영권 위협” 논쟁 지속

올해 자사주를 활용해 교환사채(EB)를 발행한 기업이 지난해의 두 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자사주 의무소각 규제’를 피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었다.

● EB 발행, 올 6월 10건에서 9월 36건으로

16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1월부터 이달 15일까지 상장기업들이 발행한 EB 규모가 3조3866억 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발행된 EB 규모(1조2583억 원)의 약 2.7배 수준이다. 발행 건수도 올해 9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2건)의 두 배가 넘는다.

EB는 기업이 보유한 주식(자사주 또는 타사주)과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채권이다. 채권자는 향후 주식 가격 상승에 따른 주식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 대신 이자율이 다른 채권보다 낮은 편이다. 전환사채(CB)와 유사하지만, CB는 신주를 발행해야 하고 EB는 보유 중인 기존 주식과 교환한다는 점이 다르다.

기업들의 EB 발행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급격하게 늘었다. 올해 1∼5월 한 자릿수였던 EB 발행 건수는 6월 10건으로 늘었고 지난달에는 36건까지 급증했다. 시장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3차 상법개정안에 포함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앞두고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몰린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들이 보유한 자사주를 소각하면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든다. 이는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반면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소각하는 대신 EB로 발행해 우호 세력에 넘기면 의결권이 생겨 최대 주주에게 유리할 수 있다. 자사주 소각 대신 EB를 발행하면 최대 주주들은 반기지만 개인투자자들은 내키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EB 발행을 결정한 뒤 주가가 하락하는 일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교환사채 발행을 처음 공시한 36개 기업 중 25곳(69.4%)의 주가가 공시 이튿날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KCC는 지난달 24일 4300억 원 규모의 EB 발행을 공시했다가 하루 만에 주가가 11.75%나 급락하기도 했다. 주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KCC는 EB 발행 계획을 철회했다.

● 금융당국 “EB 발행 공시 기준 개정, 20일 즉시 시행”

기업들의 EB 발행과 주가 하락이 이어지자 금융당국이 나섰다. 금감원은 EB의 발행 공시 작성 기준을 개정하고 20일부터 즉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자금 조달 의사결정 과정을 개인투자자들에게 상세히 밝히라는 취지다. 기업들은 20일부터 다른 자금 조달 방법 대신 자사주 대상 EB 발행을 한 이유, 발행 타당성 검토 내용 등을 기재해야 한다.

다만 기업마다 다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강제적인 자사주 소각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상장사협의회는 ‘자기주식 의무소각 제도 도입안의 문제점과 대안’ 보고서를 통해 “자사주 소각이 주주가치 상승에는 기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이 저해되고 성장동력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또 차등의결권 등을 통한 경영권 방어가 가능한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사주 소각을 확대하는 것은 긍정적일 수 있으나 빠른 속도로 진행할 경우 기업들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며 “소각 의무화 규모나 속도 등에서 균형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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