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에 꽂힌 ‘1·10 대책’[황재성의 황금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13일 0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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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0 대책’, 1기 신도시·재건축 속도전 강조
2: 패스트트랙 통해 재건축 6년 이상 단축 기대
3: 주택시장 위기 돌파구…강력한 실행 의지 홍보
4: 동시다발 사업 추진에 따른 혼란과 갈등 우려도

황금알: 황재성 기자가 선정한 금주에 알아두면 좋을 부동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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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0일 발표한 ‘국민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대책’(이하 ‘1.10대책’)은 속도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경기 고양 일산동구 고양아람누리에서 ‘1.10대책’ 발표 전 진행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는 모습이다.  뉴시스
정부가 10일 발표한 ‘국민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대책’(이하 ‘1.10대책’)은 속도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경기 고양 일산동구 고양아람누리에서 ‘1.10대책’ 발표 전 진행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는 모습이다. 뉴시스
‘속도전’

정부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개최한 뒤 발표한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이하 ‘1·10 대책’)에 대해 이튿날 주요 일간지 대부분은 이런 제목을 달았습니다. 일부는 ‘재건축 6년 빨라진다’거나 아예 대놓고 ‘재건축 속도전’, ‘1기 신도시 재건축 속도전’ 등과 같은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번 대책은 ‘도심공급 확대’부터 ‘다양한 유형 주택공급 확대’ ‘신도시 등 공공주택 공급 활성화’ ‘건설산업 활력 회복’ 등을 위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각종 규제 완화부터 세제 및 정책 자금 지원, 전세사기 피해지원 및 예방 강화,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스(PF) 지원방안, 재정 투자 통한 건설투자 확대 및 민자사업 확대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이 ‘속도전’에 주목한 이유는 시장에 미칠 영향이 다른 대책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이를 유도한 측면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토론회에 앞선 모두발언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속도를 내서 이 문제를 풀고 국민들의 집 걱정을 덜어드리겠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속도전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입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1·10대책’ 관련 세부내용 설명자료에서 ‘(재개발·재건축의) 속도는 빠르게’라거나 ‘(1기 신도시 등 노후계획도시 재정비의) 사업 기간 단축’, ‘(소규모 정비 및 도심복합사업의) 속도 제고’ 등과 같은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최근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정부 대책의 속도전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택공급의 선행지표인 인허가나 착공 물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2~3년 뒤 수급 불안마저 우려되고 있습니다. 공급 위축 장기화는 건설 경기 침체로 이어지고, 건설산업 전반과 지역경제 등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속도전에 치우진 이번 대책이 불러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잖습니다. 우선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재개발·재건축이 추진되면서 예상되는 지역 간 갈등과 난개발 우려입니다. 급등한 공사비 등을 이유로 멈춰진 사업장이 많은 상황에서 당장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또 3개월도 남지 않은 총선용 대책이라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습니다.

정부는 속도전을 앞세운 이번 대책의 기대효과로 “▲민간 부문의 수요·공급 규제 개선 ▲주택건설 사업성 제고 통한 주택시장 활성화 ▲수요 많은 도심 내 공급 확충 ▲서민의 주거사다리 기능 수행할 다양한 유형의 주택 신속 공급 ▲공공 공급물량 확대와 민간참여 확대를 통한 공급 정상화 견인 등”을 꼽았습니다.

과연 정부 바람대로 ‘1·10 대책’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요. 현재 상황에서 예측하기란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시장에 미칠 영향이 적잖은 만큼 ‘1·10 대책’의 주요 내용과 속도전이 펼쳐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 그에 따른 문제점 등을 짚어보겠습니다.

● 사전 안전진단 없이 재개발·재건축 사업 추진
‘1.10대책’을 통해 재개발.재건축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패스트트랙 제도가 도입된다. 이는 준공한 지 30년이 넘은 주택에 대해서는 사전에 안전진단 통과 없이도 관련 조합을 설립하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핵심이다. 사진은 서울 도심 아파트 전경 모습이다. 뉴시스
‘1.10대책’을 통해 재개발.재건축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패스트트랙 제도가 도입된다. 이는 준공한 지 30년이 넘은 주택에 대해서는 사전에 안전진단 통과 없이도 관련 조합을 설립하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핵심이다. 사진은 서울 도심 아파트 전경 모습이다. 뉴시스
‘1·10 대책’은 크게 4개 부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도심공급 확대 ▲다양한 유형의 주택공급 확대 ▲신도시 등 공급주택 공급 활성화 ▲건설경기 활력 회복 등입니다. 이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속도전을 통한 주택공급시장의 활성화입니다. 이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거나 정비하고,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방안 등이 동원됐습니다.

특히 시장에 미칠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도심공급 확대의 경우 다시 ▲재개발·재건축 ▲1기 신도시 재정비 ▲소규모 정비·도심복합사업으로 나뉘어 속도전을 통한 활성화 방안이 제시됐습니다.

우선 재개발·재건축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패스트트랙 제도가 도입됩니다. 이는 준공 30년이 넘은 주택에 대해서 사전 안전진단 통과 없이도 재개발·재건축 조합 설립을 통한 사업 추진을 허용하는 게 핵심입니다.

현재는 안전진단을 거친 뒤 사업계획 입안→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 수립→재개발·재건축사업 조합추진위 구성→조합 신청→조합 설립 등의 절차를 거친 뒤 사업인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사전 안전진단 없이도 사업계획 입안과 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 수립 과정에서 ‘안전진단-추진위 설치-조합 신청-조합설립’ 등의 절차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패스트트랙이 도입되면 ‘사전 안전진단’을 밟은 데 걸리는 시간(평균 1년)과 ‘추진위 구성→조합 신청→조합 설립’에 필요한 시간(2년)이 단축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최소 3년이 줄어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밖에 정비사업 추진 요건을 완화하고, 조합 설립에 필요한 자금 지원을 신설하는 한편 재건축 부담금 완화, 표준계약서를 활용한 공사비 갈등 완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한국부동산원에 설치된 도시재창조센터를 통한 종합컨설팅 등도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국토부는 “계획대로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방안이 진행되고,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까지 적용하면 사업기간이 최대 6년 이상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1기 신도시 등 노후계획도시 재정비 부문도 통합 재건축 시 안전진단 면제와 용도지역 변경 및 용적률 상향 등을 통해 사업 기간을 단축하고, 사업성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이를 통해 올해 안에 시범사업 성격의 ‘선도도시’를 지정하고, 2027년 첫 사업 착공도 추진됩니다.

소규모 정비 및 도심복합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조합 설립에 필요한 주민 동의률을 80%에서 75%로 낮추고, 교통 경관 등에 대한 심의를 통합 처리하는 방식으로 사업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이 마련됐습니다.

‘신도시 등 공급주택 공급 활성화’ 관련해서도 정부는 신도시 조성속도 높이기를 목표로, 인력과 자본 추가 투입을 통해 ‘지구 착공 6개월 이상 단축’과 일정 기간 내 토지보상착수 의무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 주택 착공 물량 반토막…2~3년 뒤 수급 불안 우려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 부처 장차관들이 ‘1·10 대책’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 뉴시스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 부처 장차관들이 ‘1·10 대책’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 뉴시스
정부가 이처럼 속도전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주택시장의 상황의 녹록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주택시장의 근본적인 안정과 국민의 안정된 주거생활을 위해서는 충분한 주택공급을 통한 수급균형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1인 가구 급증, 빠르게 진행하는 고령화 등 인구변화로 다변화되는 주택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다양한 유형의 주택공급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주택 수요를 보여주는 가구수 증가에 비해 공급실적은 심각한 부진에 빠져 있습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낮은 출산율에 따른 인구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가구수는 2020년 2073만 가구에서 지난해 2183만 가구로 늘어나고, 2025년 2231만 가구, 2030년 2318만 가구, 2040년 2387만 가구로 꾸준하게 증가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반면 주택공급 상황을 선행적으로 보여주는 인허가와 착공물량은 지난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지난해 11월까지 인허가 물량은 29만4000채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7% 감소했고, 착공은 17만 채로 무려 52%가 줄었습니다. 이러한 공급 위축이 장기화될 경우 2~3년 뒤 심각한 주택시장 수급 불안과 함께 집값 불안을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또 건설산업과 지역경제 등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실제로 태영건설의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 신청에서도 드러났듯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건설시장 프로젝트파이낸스(PF) 부실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경기에 또다른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 나타나는 주택공급 부진 문제가 올해 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우려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고금리와 고물가로 인한 주택건설의 사업성 악화가 지속되면서 지난해 중반 반짝 회복세를 보였던 주택시장은 최근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습니다.

최근 재건축 3대 규제(분양가상한제, 안전진단,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개선됐지만,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과도한 공급 규제 여파로 선호도 높은 도심지역의 주택공급 기반이 크게 취약해진 상태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정부는 따라서 ‘1·10대책’을 통해 주택공급을 가로막는 규제를 완화하고 주택 수요를 되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주택공급이 확대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속도전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이번 대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실현 의지를 보여주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이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토부 산하단체장과 기자단 등 150여 명을 초청해 가진 신년인사회에서 “대통령 임기 내에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국민이 피부로 체감하는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3개월 앞둔 총선용 카드라는 비판도
‘1.10 대책’에 따라 1기 수도권 신도시 사업도 사업기간이 대폭 단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사진은 1991년부터 입주가 시작된 분당신도시 전경. 성남시 제공
‘1.10 대책’에 따라 1기 수도권 신도시 사업도 사업기간이 대폭 단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사진은 1991년부터 입주가 시작된 분당신도시 전경. 성남시 제공
하지만 속도전을 강조한 대책에 대한 부작용 우려도 적잖습니다. 우선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추진되면서 발생할 사회적 혼란과 갈등에 대한 우려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전국 주택은 1916만 채입니다. 이 가운데 지은 지 30년이 넘은 주택은 449만 채로 23.4%에 달합니다. 여기에 지은 지 20년 이상~30년 미만으로서 조만간 재개발·재건축 사업대상에 포함될 주택도 551만 채(28.8%)나 됩니다. 둘을 합치면 1000만 채로 전체 주택의 절반을 넘습니다.

이런 물량들이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한꺼번에 나선다면 사업 우선권 경쟁을 둘러싼 지역 간 갈등과 대 정부 압력은 상상을 초월한 수준으로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즉 인허가를 다른 지역보다 먼저 따내기 위한 치열한 경쟁과 사회적 혼란이 펼쳐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재개발·재건축 관련 정책이 정권의 이념적인 성향에 따라 규제 강화와 완화를 오락가락하는 점도 이런 우려를 부추기는 요인입니다. 즉 완화를 추진하는 정권에서 인허가를 따내기 위한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재개발·재건축은 사업성 확보를 위해 두터운 주택 수요층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대도시 중심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서울과 인천, 경기도에서 활발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역대 정부마다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지만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는 과제인 국토의 균형발전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 공사비 급등이나 고금리 기조에 따른 주택경기 침체 등으로 멈춰진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번 대책이 정부가 원하는 수준으로 당장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실제로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나 은평구 대조1구역 등은 공사비 문제 등으로 멈춰진 상태입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점도 걸림돌입니다. 야당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야당에서 선뜻 도와주길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3개월도 남지 않은 22대 국회의원 선거(4월 10일)를 앞둔 시점에서 내놓은 대책이라는 점에서 표를 얻기 위한 총선용 대책이라는 시각도 제기됩니다. 일각에선 “이번 대책이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됐던 뉴타운 정책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까지 내놨습니다.

당시 뉴타운 정책은 ‘타운돌이’를 여럿 배출했습니다. 타운돌이는 2008년 제18대 총선을 이명박 정부가 앞두고 대대적으로 추진한 뉴타운 사업을 활용한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던 수도권 지역 여당(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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