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성어는 죄가 없다[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47〉

  • 동아일보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80세쯤 돼 보이는 해설사가 유아원에서 단체로 온 서너 살 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집중해서 듣게 하는 노인의 능숙한 말솜씨에 시선이 끌려 걸음을 멈췄다. 그 노인은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하나씩 가리키며 이름을 가르쳐줬다. 능성어, 점성어, 개볼락…. 물고기 이름이 불릴 때마다 귀가 솔깃해졌다. 박물관 로비의 대형수족관에 넣어둘 어종은 아니고, 주로 횟감용으로 쓰이는 물고기였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쥐치, 돌돔, 넙치, 능성어, 점성어, 개볼락 등 횟집 수족관을 옮겨놓은 듯했다.

해설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노인에게 다가갔다.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가 횟감용으로 쓰이는 종류네요”라며 말을 건넸다. “인근 횟집 수족관에서 사 왔으니 횟감용이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라고 노인은 답했다. 뒤이은 노인의 말에 더욱 놀랐다. “물고기 구입에는 얼마 안 들었지만, 수족관 두 개 운영에는 돈이 많이 듭니다. 1년 내내 수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전기요금, 매달 두 번씩 잠수부가 수족관에 들어가 청소하는 비용, 먹이 구입비 등이 연간 1억 원이 넘게 든답니다. 저기 보이는 점성어는 수족관에서 21년을 살고 있으니, 유지비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비싼 물고기라 할 수 있지요”라고 말했다. 횟감용 생선으로 여겼던 점성어가 수족관에서 20년 넘게 살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미심쩍은 마음에 점성어가 21년째 살고 있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다가 2011년 퇴직하자마자 안산어촌민속박물관에서 해설사로 일하기 시작했단다. 박물관이 개관하던 2005년부터 자주 방문했기에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점성어가 다섯 마리였는데 두 마리는 죽고 세 마리가 남았습니다. 꼬리에 있는 점 문양이 또렷하더니 나이가 드니까 흐릿해지네요. 수족관에서 저렇게 오래 산 물고기는 바다로 돌려보내면 금방 죽습니다. 20년 넘게 일정하게 유지된 수온과 사람이 주는 먹이를 먹고 살았으니, 바다에 방류하면 적응을 못 하는 겁니다. 점성어에게 이 수족관은 세상의 전부입니다”라고 말했다. 노인의 말을 듣고 나니 점성어에 대해 좋지 않았던 인식이 옅어지는 듯했다.

점성어는 민어와 생김새가 비슷해 ‘홍민어’라고도 한다. 이런 이유로 한때 점성어를 민어로 속여 파는 일이 많았다. 회를 썰었을 때 붉은색을 띠는 혈합육이 참돔과 유사해 지금도 참돔회로 둔갑하는 일은 흔하다. 참돔의 혈합육은 연한 붉은색이고 점성어는 진하지만, 요리사가 혈합육을 걷어내는 잔기술을 쓰면 웬만한 사람들은 구별하지 못한다. 회의 식감은 점성어가 힘줄이 있어 질기고 질겅거려 참돔과 차이가 있으나, 이 역시 사람들이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습관적으로 수족관에 있는 어종을 확인한 후 차림표를 꼼꼼히 본다. 수족관에 점성어가 있음에도 차림표에 점성어회가 표기돼 있지 않을 경우, 모둠회에 참돔 대신 점성어가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점성어는 참돔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살수율이 높아 횟집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물론 점성어의 식감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점성어라고 명확히 밝히고 판매하면 문제 될 게 없다. 속여 파는 사람이 나쁘지, 점성어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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