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청구권 수혜기업들 “요청 없어서” “우린 대상 아냐” 변제금 출연 놓고 엇갈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5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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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를 제외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국내 수혜기업 15곳이 정부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을 위한 변제금 출연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철주금 대신 ‘제3자 변제’ 주체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이 기업들이 기금을 마련해 변제하는 것이 정부 해법의 골자다. 포스코는 15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기부금 40억 원을 납부했지만 다른 기업들은 여전히 “정부 요청이 있으면 검토하겠다”거나 아예 재단 기부금 출연에 부정적인 의사를 밝히기도 해 난항이 예상된다.

포스코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남은 40억원의 기금을 납부한 15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관계자들이 오가고 있다. 



포스코는 한국도로공사, 한국철도공사, 외환은행, 한국전력공사, KT, KT&G, 한국수자원공사 등과 함께 한일 청구권자금 수혜기업 중 하나로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 이후 청구권자금 수혜 기업들 가운데 처음으로 기부금을 출연했다.                                                              뉴스1
포스코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남은 40억원의 기금을 납부한 15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관계자들이 오가고 있다. 포스코는 한국도로공사, 한국철도공사, 외환은행, 한국전력공사, KT, KT&G, 한국수자원공사 등과 함께 한일 청구권자금 수혜기업 중 하나로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 이후 청구권자금 수혜 기업들 가운데 처음으로 기부금을 출연했다.                                                              뉴스1

● 2800만 원부터 111억 원 까지…청구권자금백서로 기업 출연 예상액 환산해보니


포스코는 이날 오전 “정부의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한 입장 발표에 따라 과거 재단에 100억 원을 출연하겠다는 약정서에 근거해 남은 40억 원을 정부 발표 취지에 맞게 자발적으로 출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포스코는 2012년 이사회 의결을 통해 100억 원을 출연하기로 했고,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이미 60억 원을 출연했다. 재단이 2018년 10월과 11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강제징용 피해자 15명에게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금과 이자 및 소송비용 등이 약 40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포스코의 납부로 변제금 마련의 8부 능선은 넘은 셈이다.

다른 기업들은 과연 얼마를 부담해야 할까. 동아일보가 경제기획원이 1976년 발행한 청구권 자금 백서 등을 종합해 포스코의 전체 출연액(100억 원)을 기준으로 환산하고 출연 비율을 책정한 결과 예상 출연액은 외환은행(현 하나은행) 111억1700만 원, 한국수자원공사 20억9400만 원, 중소기업은행(현 IBK기업은행) 18억6100만 원, 코레일 17억7100만 원 순이었다. 적게는 2800만 원(KT&G)에서 6억37000만 원(농협) 정도를 출연해야 할 수도 있다. 다만 당시 유·무상 차관을 실제로 받은 뒤 상환한 금액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원달러 환율을 현재 시점으로 환산하게 될 경우 다소 차이가 날 수 있다.

※ 표: 한일청구권협정 수혜  국내 기업 16곳이 기부금 출연 시 예상액

기관
대일청구권지원자금
(단위 : 달러)
출연 예상액
(단위 : 원)
한국농어촌공사
1689만 3000
14억 1400만
농수산물유통공사
230만 9000
1억 9300만
한국수자원공사
2501만 4000
20억 9400만
한국광해광업공단
63만 9000
5300만
도로공사
689만 3000
5억 7700만
한국수력원자력
108만 8000
9100만
한국전력
366만 6000
3억 700만
코레일
2116만 3000
17억 7100만
남동발전
178만
1억 4900만
KT
419만 3000
3억 5100만
포스코*
1억 1948만
100억(기준액)
KT&G
33만 1000
2800만
외환은행
1억 3282만 5000
111억 1700만
중소기업은행
2223만 2000
18억 6100만
농협
760만 9000
6억 3700만
수협
715만 2000
5억 9900만

● “우린 수혜 기업 아냐” “여유 없다” vs “합리적 수준에서 협조” 


6일 정부 해법발표 전후로 수혜 기업들은 “(정부)요청이 있으면 검토하겠다”고 몸을 낮춰왔다. 포스코가 신호탄을 터뜨린 이날도 동아일보와 접촉한 대다수 기업들은 선뜻 기여 의사를 밝히길 꺼려했다.

오히려 재단 출연이 힘들다는 취지로 입장을 내비친 곳도 있었다.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요청을 받은 바 없고, 기부 여부를 검토하지 않았다”며 “공사는 정부 예산을 받아 집행하는 준정부기관인데 수억 원씩 출연할 여유가 없다”고 했다. 한국수력원자력도 “과거 한국전력이 화력발전소 건설 관련 혜택을 받았다”며 “우린 청구권협정 수혜 기업이 아니라고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전력은 “요청이 오면 검토해볼 예정”이라는 게 공식 입장이지만 ‘가뜩이나 적자 상황인데 이사회에서 자금 출연 논의를 긍정적으로 기대해보기도 어렵다’ ‘민감한 정치적 문제에 섣부르게 나서기도 어렵다’는 내부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구권자금 백서를 검토해보고 수혜기업이 아닌 것 같다고 밝힌 곳도 있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은 “당시 광업 부문 48개 광산에 기계장비 지원하면서 산업부가 하고 저희는 집행을 도운 것이고, 실은 광산 업체들이 수혜 기업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며 “저희가 수혜를 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은행들은 “현황을 파악 중에 있다”(IBK기업은행)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방안에 대해 현재까지 기부금 출연 요청은 없었고 사실 관계 파악 등이 필요한 상황”(하나은행)이라고 전했다. 

협조 의사를 시사한 곳도 있었다.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청구권협정의 유무상 차관 수혜를 검토해본 결과 0.74% 정도를 분담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재단의 기부금 출연에 대한 부분은 합리적인 선에서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다만 “사실 수혜자금이 기업이 아닌 정부 부처에서 직접 집행한 경우도 많아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KT&G는 “사회적 논의 과정을 신중히 지켜보고 있다”며 “사회적 합의 이행 과정에 성실히 협조할 계획”이라고 했다. 다만 회사 차원에서 기부를 전제로 한 구체적인 검토는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공사들은 청구권협정 이후 수십 년이 흐르면서 기관 내지 기업이 인수 합병되거나 쪼개지면서 적격대상인지, 조직 내부에서 검토를 하게 된다면 담당은 누군지를 두고도 난맥상을 빚는 상황이다. “검토한 바 없다”에서 “파악 중”으로, 다시 “요청이 오면 검토하겠다”로 입장을 정정해 온 기업들도 있었다.

기업 또는 공사
입장
한국농어촌공사
“정부 예산을 받아 집행하는 준정부기관인데 수억 원씩 출연할 여유가 없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정부나 재단으로부터 배상금 대납 등의 공식적인 요청이 아직 없었고, 추후 요청이 오면 검토하겠다”
한국수자원공사
“유·무상 차관 검토해보니 0.74% 정도 부담 추산...합리적 선에서 기부금 출연할 수 있어”
도로공사
“분담비율이나 분담액 등 현재로선 전혀 지금 검토된 게 없다”
한국수력원자력
“과거 한국전력이 화력발전소 건설 관련 수혜를 입은 것, 우리는 청구권협정 수혜기업이 아니라고 파악 중”
한국전력
“요청 오면 검토해볼 예정” ‘적자 상황 고려해야’
남동발전
“정부로부터 요청 받은 바 없어...현재로서는 (자금 출연) 검토하고 있지 않아”
KT
“아직 공식 요청 오지 않았지만, 정부 요청 있을 경우 적극 검토하겠다”
KT&G
“사회적 합의 이행 과정에 성실히 협조할 계획”
외환은행(하나은행)
“사실관계 파악 등이 필요한 상황, 현재까지 기부금 출연 요청 없었어”
중소기업은행(IBK기업은행)
“현황 파악 중
농협중앙회
현황 파악하고 있어”
수협중앙회
“위판장 건립 대행 등 정부 예산 지원받을 때 돈의 꼬리표가 청구권 자금이었던 건데 저희는 수혜 대상 아닌 것으로 생각
광물자원공사(한국광해광업공단)
“우리가 아니라 당시 기계장비 지원받은 광산 업체들이 수혜기업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저희는 대상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검토도 진행되고 있지 않다”

● ‘자발적 참여’(정부)와 ‘요청있어야 검토’(기업) 줄다리기


정부와 재단은 해법 발표 후 거듭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재단 출연을 강요할 시 향후 직권남용 혐의 등을 적용받아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기업들은 “정부 요청에 따르겠다. 아직 요청이 없었다”며 요지부동이다. 한 공사 관계자는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기업들이 K재단과 미르재단에 낸 성금을 뇌물로 판단한 사례를 들며 “기업들이 굳이 먼저 나설 일이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야당은 정부나 재단이 이 기업들에게 직접 접촉하고 있는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지난주에도 더불어민주당 보좌진이 외교부 국장을 불러 기업 접촉 여부를 추궁했다”고 전했다.

정부·재단과 수혜 기업들 사이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피해자 및 유족 측이 동의할 경우 변제되는 판결금은 포스코 자금 외에 외부 기부금으로 먼저 충당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는 액수를 밝히지 않은 채 전날 재단에 기부금을 냈다고 밝혔고, 서울대 총동창회도 10일 재단에 1000만 원을 기여했다. 재일(在日) 경제인과 교포들도 재단에 기여 의사를 밝히면서 기금 마련 행렬에 동참했다.

신나리기자 journari@donga.com
고도예기자 y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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