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경제

지진이 나면 롯데월드타워로 대피해야 하는 이유는?[최영해의 THE 이노베이터]

입력 2022-01-30 09:00업데이트 2022-01-31 09:25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롯데월드타워는 사업 아니야, 투자금은 회수 불가!”
죽은 자를 위한 피라미드보다 산 자를 위한 유토피아
일본에서 번 돈 한국에 국제적 명물 만들고파
“난관은 극복 대상이지 굴복 대상 아니야”

2020년 1월 19일 영면한 롯데 창업주 고 신격호 회장이 별세 2주기를 맞았다. 울주 고향 한 산기슭에 단아하게 묻힌 신격호의 인생은 한국의 근현대사만큼이나 파란만장했다. 청년 신격호는 소설가를 꿈꾸었지만 현실은 양을 키우는 식민지 조선의 농업인이었다. 낯선 도쿄에서 롯데 신화를 일구기까지 신격호의 비즈니스에는 특별함이 있었다. 한국의 랜드마크를 만들기 위해 세계 최고층을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일군 롯데월드타워에서 내려다본 한강은 대한민국의 기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신격호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나남)에 나타난 고인의 도전과 기업가정신에서 우리 시대 거인의 저력을 엿볼 수 있다.


“몇 년이 지나면 투자금을 회수할 것이라 보십니까?”
“회수 불가!”
“네?”

서울의 랜드마크로 우뚝 선 잠실 롯데월드타워 건설 과정에서 롯데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은 이런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한다. 기업은 이윤 창출이 목적이다. 신격호의 생각은 달랐다. 롯데월드타워를 지으면서 사업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우유 배달로 시작한 신격호의 꿈은 고국에 멋들어진 ‘명소(名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이 롯데월드타워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신격호는 ‘한강의 기적’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일제 치하 식민지 조선에서 현해탄을 건넌 신격호는 ‘재팬 드림’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시모노세키 항에 내리자마자 얼굴에 피가 철철 흐르도록 흠씬 두드려 맞은 일본 형사의 매였다. 몸뚱이 하나로 조선 청년 신격호는 척박한 일본 땅에서, 미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도쿄 땅에서 오직 성실과 노력, 창의로 지금의 롯데 신화를 만들어냈다.

신격호 롯데 창업주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공사 현장에서 실무자에게 지시하는 모습. 사진 롯데

●“롯데월드타워 돈 벌려고 했으면 못 지어”
“일본에 산재한 우리 문화재를 신 회장이 수집하면 어떻겠소?”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생전 언젠가 신격호 롯데 회장에게 이렇게 권유했다. 호암 이병철은 대단한 문화재 수집가였다. 신격호는 이 회장의 문화재 수집품을 보면서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던 중 이병철 회장이 던진 한마디는 신격호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나도 문화재를 수집해 볼까? 국가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보람도 느낄 수 있을 것 아닌가.’

신격호는 실제 ‘문화재 공부’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교양 수준의 학습이었지 문화재를 탐구해 수집할 만한 ‘광(狂)’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과거의 유산보다는 미래에 남길 문화재를 창조하는 것에 흥미가 있었다. 그 마지막이 ‘롯데월드타워’라고 신격호는 그의 회고록에서 밝혔다.

신격호가 롯데월드타워를 구상한 것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잠실이 황량한 허허벌판이었을 때다. 신격호는 거기에서 낙원을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한 고난의 길이 될지를 그 때는 몰랐다.

“회장님,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십니까. 그냥 아파트 지어서 파는 게 골치도 아프지 않고 수익도 엄청날 겁니다.‘

1980년대 잠실 석촌호수와 주변 모습. 사진 롯데

주변 많은 사람들이 신격호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아파트 지어서 올리면 분양수익만 챙겨도 크게 남는 장사인데, 뭣 하러 타워를 올리느냐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신격호는 빙그레 웃기만 할 뿐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았다. 소이부답(笑而不答). 돈은 이제 벌만큼 벌었다. 사회에, 국가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기업가정신을 넘어 시민정신이 앞선 신격호였다. 이병철 회장의 과거 문화재 수집을 넘어선 현대판 국보급 문화재를 만들겠다는 것이 염원이었다.
●이집트의 파라미드와 북한의 유경호텔
1994년 4월 이집트 피라미드를 보러 간 신격호는 그 때의 충격을 잊지 못했다. 찬란한 인류사에 빛나는 문화유산인 피라미드 안에서 느낀 감흥은 마치 천체를 유영하는 듯한 묘한 기분을 자아냈다. 피라미드는 영생(永生)을 추구한 전제 군주의 욕망이 노예의 노동을 착취한 구시대의 유물이었지만 이집트 문명을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10만 명이 20년이나 매달려 지은 것이 피라미드였다. 인간과 건축물 사이에서 신격호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롯데월드타워 디자인 보고를 받는 신격호 회장. 사진 롯데


”언제까지 서울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고궁만 보여줄 것인가? 숭례문 경복궁이 대한민국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까? 한국을 찾아오는 지구촌 시민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공유 건축물, 세계적 명성을 가진 건축물이 있어야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현대적인 문화 유산을 반드시 남기고 싶다.“

롯데월드타워가 들어선 곳은 당초 신격호가 ’시월드‘라는 실내 해양공원을 조성하려고 매입한 것이었다. 여기다 지상 33층 규모의 호텔과 백화점 문화관광홀을 만들기 위해 1987년 12월 14일 부지 8만7183㎡(2만6372평)를 사들였다. 당시 돈으로 863억원이나 되는 거금이었다. 서울올림픽 주경기장이 막 완공되고 잠실 개발이 한창이던 때였다. 석촌호수 앞의 이 부지는 당시 나대지였다.

신격호의 계획이 180도 바뀐 것은 그 무렵 북한이 105층 높이의 초고층 유경호텔을 건설한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였다. 북한이 서울올림픽에 대응하기 위해 높이 330m인 피라미드 모양의 최고층 호텔을 짓는다는 플랜이었다. 이 계획은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바람에 한동안 평양 시내의 흉물로 방치돼 있었지만, 신격호에겐 큰 자극이 됐다.

무수히 반복된 롯데월드타워 디자인 회의. 사진 롯데

●”언제까지 외국인들에게 경복궁과 고궁만 보여줄 것인가“
”경복궁 같은 고궁 외에도 한국을 상징하는 새로운 공간,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축조물을 만들어 보자.“

신격호는 북한의 유경호텔에 맞서 100층 이상 규모의 호텔과 백화점, 면세점을 짓기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단순한 건물 욕심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재벌의 투기억제 대책을 발표, 비업무용 부동산 처분 명령을 내리면서 롯데월드타워 건설은 한동안 표류 상태에 빠지게 됐다.

부지를 사들인지 24년이 지난 2011년 6월 4일 새벽 5시 신격호는 희미한 여명(黎明) 속에서 레미콘 차량들이 쉴 새 없이 공사 현장을 드나드는 것을 바라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야 주춧돌을 놓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지하 암반에 108개의 파일을 박아 보강하고, 그 위에 5천300대의 레미콘이 32시간 동안 쌓아 올린 두께 6.5m의 기초 매트와 함께 콘크리트 양은 다른 건축에 비해 2.5배나 많이 들어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과 견고함을 갖춘 공사의 시작이었다.

롯데월드타워 공사 진행 모습. 사진 롯데

롯데월드타워 공사 진행 모습. 사진 롯데

●23번 바뀐 마스터플랜, 최종 승자는 ’붓‘
20년이 넘는 동안 롯데월드타워 마스터플랜은 23번이나 바뀌었다. 건물 외관에서부터 다른 초고층 건물과 차별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처음엔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나 세계무역센터(월드트레이드타워)를 참고했다. 2002년에는 파리 에펠탑에서 영감을 얻어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의 모습을 구현하기도 했다. 무려 23차례의 디자인 변경 끝에 한국적 외관이 좋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전통미를 살린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이를 건물로 구현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당간지주(幢竿支柱), 방패연, 삼태극, 대나무, 엽전, 전통문살, 첨성대, 가야금, 도자기, 붓 등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적 요소를 모티브로 10개가 넘는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최종 디자인은 한국의 전통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곡선미를 택했다. 처마와 저고리, 버선 등에서 나타나는 곡선미를 건물 상층부에 보여주고 새 부리 모양의 전망대를 만들었다. 롯데월드타워를 멀리서 보면 붓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습임을 알아 챌 수 있다. 설계는 미국 건축설계회사인 KPF가 맡았다. 설계비만 3000억원이 들었다. KPF사는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상하이 금융센터 등을 설계한 초고층 건물 건축의 베테랑 기업이었다. 천문학적 금액이었지만 신격호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KPF는 전례 없는 복합 구의 초고층 건물인 롯데월드타워를 설계하면서 많은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롯데월드타워 전경. 한국의 전통적인 곡선미를 살려 붓을 세운 모습을 연상케 한다. 사진 롯데

●’지진이 나면 롯데월드타워로 대피해야 한다‘

롯데월드타워 건축에 들어간 투자금은 총 4조2000억원이다. 555m 높이에 지하 6층 지상 123층 초고층 빌딩이다.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건물이다. 신격호의 꿈은 세계에서 최고로 높은 빌딩을 짓고 싶었지만 허가가 늦어지면서 희망을 이루지 못했다. 대지 2만6372평에 연면적은 24만3776평이다. 연면적을 축구경기장으로 따지면 115개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해마다 5000만 명이 롯데월드타워를 드나들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1년에 한번은 롯데월드타워를 다녀간 셈이다. 이 가운데 10%인 500만 명이 해외관광객이다. 신격호의 꿈은 이렇게 달성되고 있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에게 롯데월드타워는 명소(名所)가 된 것이다. 2014년 10월 월드몰 개장 이후 지금까지 다녀간 사람이 누적으로 2억8000만 명에 이른다. 서울 명동과 홍대 등 강북에 밀집된 외국인 쇼핑지가 롯데월드타워로 확장되고 있다.

”롯데월드타워의 모든 기록은 역사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다. 공간의 효율성 보다 구조적 안전성에 최우선을 둬 설계했다. 40층마다 대나무의 마디 역할을 하는 구조물을 설치했다. 진도 9도의 강진과 초속 80m의 바람에도 견디도록 했다. ’앞으로 지진이 나면 무조건 롯데월드타워로 대피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롯데월드타워에 적용된 설계와 핵심 기술은 이전의 대한민국 건축사에서는 볼 수 없던 것들이 많다. 롯데월드타워 건설 현장은 매 순간이 새로운 시도였고, 모든 결과는 대한민국의 신기록이었다.“

신격호가 생전 그의 회고록에서 밝힌 심경이다. 2015년 12월 외부 공사를 마무리하고 내부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대들보를 들어올리는 상량식(上梁式)이 이뤄지던 날 신격호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초고층 건물에 대한 우려를 희망으로 바꾸고, 질책을 격려로 바꾸기 위해선 뼈를 깎는 노력이 뒤따라야 했다. 공사에 참여한 500만 명의 작업자와 롯데월드타워를 응원해 준 국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였다.

롯데월드타워 건설 현장의 신격호 회장. 사진 롯데

● 소년 같은 신격호의 모습을 보다
롯데월드타워 건설이 한창 마무리에 들어갈 즈음 신격호의 건강은 별로 좋지 않았다. 외부 활동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필생의 숙원인 롯데월드타워 완공을 내 손으로 이루고 말겠다는 집념은 그를 병상에서도 가만 누워 있게 하지 못했다. 한 달에 두세 차례 대면 보고를 받고 공사 현장도 찾았다. 롯데의 한 간부가 전하는 뒷얘기다.

”공사 초기엔 명예회장님이 일본과 서울을 오가면서 이른바 ’셔틀 경영‘을 할 때였습니다, 기분 좋게 보고 받는 모습을 보면 마치 동심(童心)으로 돌아간 해맑은 모습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임원들이 뭔가 껄끄러운 보고를 해야 할 때는 롯데월드타워 보고 때 살짝 끼워 넣는 경우도 왕왕 있었습니다. 명예회장님이 기분이 좋은 때라 묻어가는 경우가 있었지요.“

롯데월드타워 42층부터 71층까지엔 ’시그니엘 레지던스‘라는 주거 단지가 있다. 최소 63평에서 넓게는 376평까지 호화 거주시설이다. 평균 분양가가 평당 6900만원으로 한 채에 60억~300억원에 이른다. 배우 조인성과 클라라, 동방신기의 시아준수 등 유명인들이 살고 있다. 롯데는 올해 분양을 마치면 1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투자금(4조2000억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울주 둔기리에 위치한 신격호 롯데 창업주의 묘소. 와석에 울주 청년 신격호의 꿈이 서려 있다. 사진 롯데

●공수래공수거, 조선 청년 신격호가 남긴 것
신격호는 그의 회고록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장부상으로는 회수 불가일지 몰라도 장구한 세월에 걸쳐 얻는 무형의 이익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서울의 품격을 높이고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면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도 어렵지 않겠는가? 이 프로젝트는 사업으로 봐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나는 다만 타지에 가서 번 돈으로 한국에 좋은 건축물, 국제적 명물로 한국이 자랑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롯데의 비전을 품고 잠실벌에 우뚝 솟은 롯데월드타워는 이제 21세기 대한민국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기꺼이 우리 국민과 고객 모두에게 ’가족이 함께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바친다.“

신격호는 지금 자신이 태어난 울주 산골의 둔터 마을의 산기슭에 묻혀 있다. 일제 시대 천자문을 배우면서 보낸 어린 시절, 그는 미래의 꿈을 찾아 보통학교에 진학했다. 소설가의 꿈과 양을 치는 농업인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번민하다가 어느 날 경성(서울)을 보면서 큰 세상을 발견했다. 조국이 먹고 살기 어려울 때 청년 신격호는 울산에서 북한 함경도 개마고원까지 올라가 종양(種羊)장에서 1년 동안 양치기 견습생도 했다. 스무 살 되던 한겨울 공부를 더 하고 싶어 83원을 들고 부관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항으로 향했다. 미지의 세계 일본에서 신격호는 오로지 신의와 성실, 노력과 창의로 일본인을 감동시켰다.

소박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는 무덤 한편의 와석(臥石).

”여기/ 울주 청년의 꿈/ 대한해협의 거인

신격호/ 울림이 남아 있다

거기 가봤나?

2020년 1월 19일

영면“


잠실에 우뚝 솟은 롯데월드타워, 그리고 울주 둔기리에 있는 고(故) 신격호 롯데 창업주의 소박하기 그지없는 묘소가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실감케 한다.

우리 시대의 거인(巨人) 신격호의 명복을 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경제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