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외면한 ‘청년 일자리’ 사업

세종=주애진 기자 입력 2021-06-15 03:00수정 2021-06-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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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도 투입했지만 정원 못채워
“단순 업무… 취업에 도움 안돼”
전남에 사는 취업준비생 이모 씨(25)는 지난달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에서 뽑은 ‘공공데이터 일경험 수련생’에 지원을 하려다가 포기했다. 공공데이터 일경험 수련생 사업은 정부기관에서 공공데이터 구축을 돕는 청년 4800여 명을 뽑는 사업으로, 5개월간(하루 8시간) 월 183만 원을 받는 단기 일자리다. 적지 않은 돈을 주는데도 청년들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 씨는 “4대 보험 가입이 되지 않고 나중에 인턴 경력으로 활용할 수 없다. 작년 경험자의 후기를 보니 단순 업무라서 취업할 때도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고 했다.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시간만 허비하게 될까 봐 포기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데이터 일경험 사업은 지원자가 부족해 현재 1565명을 추가로 뽑고 있다.

최근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청년 일자리 지원사업을 대폭 늘리면서 일부 사업에서 지원자가 미달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경력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단기 아르바이트에 그치거나 청년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일자리가 우후죽순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

14일 정부에 따르면 올해 청년 구직자 지원사업 규모는 55만5000명에 이른다. 이 중 비대면·디지털 공공일자리와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등 정부가 직접 채용하거나 민간에 보조금을 줘서 만든 일자리가 13만5000명 규모다. 여기에 3월 1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으로 기존에 진행된 청년디지털일자리 사업에 6만 개가 추가되는 등 일자리가 더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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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데이터 일경험’ 사업처럼 행정안전부가 NIA를 통해 진행하는 ‘공공빅데이터 청년인턴십’은 올해 4월 1020명을 모집한다고 공고를 냈다. 하지만 정원을 채우지 못해 현재 238명을 추가로 뽑고 있다.

청년 모집기업 대부분 중소업체… 근무기간도 짧아
청년이 외면한 청년일자리

지원자가 있어도 청년과 기업의 눈높이가 달라 어려움을 겪는 사업도 있다. 1차 추경으로 시작한 농림축산식품부의 ‘K푸드 온라인 코디네이터’ 사업은 4월 청년과 경력단절여성 50명을 뽑았다. 지원자를 농식품 기업과 일대일로 연결해 온라인 시장조사나 온라인몰 관리를 맡기는 사업이다. 참여 청년은 6개월간 월 202만 원을 받는다. 정부는 인건비 90%를 지원한다. 첫 모집에 지원자 70명이 몰릴 정도로 호응이 있었지만 20명만 기업과 연결이 됐다. 이달 초 30명을 다시 모집했다. 사업을 담당하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관계자는 “온라인 업무에 뛰어난 청년을 뽑았는데, 연결해준 기업이나 임금 수준이 눈높이에 맞지 않아 포기하는 지원자가 많았다”고 했다.

행정안전부 예산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는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역시 일부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모두 채용 기업에 인건비를, 구직 청년에겐 일 경험을 지원하는 유형의 사업이었다. 서울 동대문구는 3월에 20명을 모집했는데 6명이 미달됐다. 나머지를 채우기 위해 상시 모집을 하고 있다. 경기 광주시의 광주문화센터에선 5월에 10명을 뽑으려고 했는데 2명이 모자랐다. 결국 최근 다시 모집 공고를 냈다. 올해 3명을 뽑은 충남 예산군도 연초부터 지난달까지 3차례 공고를 내야 했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선정 기업의 대부분이 중소, 영세 사업장이라 청년들이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며 “한 번 미달된 사업장은 추가 모집을 해도 지원자를 찾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취업준비생 이모 씨(24·여)는 부산의 한 지역주도형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이런 이유로 지원하지 않았다. 그는 “사업장이 대부분 중소기업이고 근무기간이 정해져 있어 계약직 느낌이 강했다”며 “차라리 공기업에서 인턴을 하면 나중에 취업할 때 경력으로 쓸 수도 있는데 그만한 장점이 없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아르바이트 자리 얻기도 쉽지 않은 청년들에게 정부의 단기 일자리가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공공데이터 일 경험에 지원한 배모 씨(25·여)는 “취업자금을 모아야 하는데 월 180만 원은 적지 않은 금액”이라며 “업무가 단순한 편이다. 취업 경험을 쌓아준다는 사업 취지에는 맞지 않지만 다른 취업공부를 같이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는 청년들에게 지원 유인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추진한 두 개의 청년 일자리사업 지원자를 모집한 위탁기관 관계자는 “작년엔 코로나19 때문에 지원자가 많았다. 올해는 민간 채용이 조금씩 늘고 있고, 조건이 좋은 공공기관 인턴도 많이 뽑아서 지원자가 줄어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일자리를 통해 청년들에게 일 경험을 제공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대부분 단기에 그쳐 청년들이 원하는 취업과는 거리가 멀다”며 “직접일자리 예산을 청년들이 선호하는 분야의 직업교육이나 민간 고용 확대를 지원하는 데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주애진 기자 jaj@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청년 일자리#외면#단순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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