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대학학자금 언제 받을지 모르는데”… 금감원 MZ세대 ‘사내기금’ 청산 요구

김형민 기자 입력 2021-03-09 03:00수정 2021-03-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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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 낸 돈보다 더 타가는 탓에 우리가 손실 책임질판” 문제 제기
노조도 퇴직자 찾아가 “메워달라”
공정성 민감 MZ세대 특징 보여줘
최근 금융감독원 노동조합 관계자들은 시중은행 임원으로 재취업한 퇴직자 선배 A 씨를 찾아갔다. 직원 자녀들의 대학 학자금으로 사용되는 ‘장학기금’에 “돈을 좀 입금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다.

금감원 노조는 지난해부터 A 씨뿐만 아니라 은행, 보험사 등 민간 금융사에 재취업한 퇴직 임원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동안 직원들에게 자녀 학자금을 지나치게 지급하다 보니 장학기금이 고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노조 관계자는 “장학기금 설립 초반에 직원들에게 후하게 지원한 탓에 후배들이 기금 손실을 뒤집어써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 직원 자녀의 대학 학자금으로 쓰이는 장학기금 규모는 현재 100억 원이며, 손실 규모는 40%가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금을 청산해 재직 중인 직원들에게 분배하면 1인당 납입한 금액 대비 40%가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금감원 장학기금은 금융회사들이 내는 감독분담금으로 운영되다가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공공기관 방만 경영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사내 기금 형태로 변경됐다. 현재 직원들이 총급여 인상분의 일부(월급의 2∼3%)를 공제해 기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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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과거 학자금 지급 기준을 따로 두지 않아 자녀수에 상관없이 학자금을 지급한 반면 걷는 돈은 적다 보니 기금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퇴직자 A 씨의 경우도 금감원 재직 시절 장학기금에서 받아간 학자금이 월급에서 일정액을 떼어내 납부했던 금액보다 2000만 원 이상 많았다. 금감원이 2017년 하반기(7∼12월)부터 자녀 2명까지만 학자금을 주는 것으로 지급 기준을 새로 마련했지만 기금 고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에 20, 30대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사내기금을 청산하자”는 금감원 직원들의 불만 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한 직원은 “금감원 임원 자녀이면 금수저인데, 오늘도 그 금수저를 위해 월급의 일부가 장학기금으로 공제됐다. 나는 이 돈을 언제 받을지도 모르고, 결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이와 달리 고참 직원들은 젊은 직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분위기다. 한 간부급 직원은 “회사가 망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들어올 신입 직원들이 기금을 채워주기 때문에 손해 볼 일은 없다”고 말했다.

사내 장학기금을 둘러싼 금감원 직원들 간의 세대 갈등은 투명하고 공정한 보상과 기여를 요구하는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부 빅테크(대형 기술기업)나 대기업에서 불거진 성과급 논란처럼 공정성에 대한 MZ세대의 요구가 분출됐다는 것이다.

급격한 저출산·고령화로 고갈을 걱정해야 할 국민연금이나 미래 세대에 책임을 떠넘기는 지나친 재정 지출 문제도 MZ세대의 부담과 불만 요인이 되고 있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MZ세대의 중요 가치는 공정성과 형평성”이라며 “이들은 본인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적극성을 보인다”고 말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자녀 대학학자금#금감원#mz세대#사내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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