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새긴 ‘마 이 순간만 참아’ 이 한마디에 24년전 부도 이겨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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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오 패션그룹 형지 회장 강연

“마! 이 순간만 참아!”

그의 목소리가 강당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10대 시절 만난 복싱 코치에게 들은 한마디다. 위기에 빠졌을 때 스스로 되뇌던 말이라고 했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상대와 스파링을 하던 중 비틀거릴 때마다 코치는 ‘마!’라며 호통을 쳤단다. 그러면 그는 거짓말처럼 일어나 없는 힘까지 짜내 라운드를 마치곤 했다.

23일 저녁 경기 성남시 SK플래닛 판교사옥 1층 대강당에 팀장급 직원 100여 명이 모였다. SK플래닛이 두 달에 한 번씩 여는 팀장급 인사이트 포럼이었다. 초청 연사는 최병오 패션그룹 형지 회장(64·사진)이었다. 1시간 반 동안 이어진 열띤 강연에서 최 회장은 “오늘 내가 한 말을 다 잊어버려도 딱 한마디, ‘마! 이 순간만 참아!’라는 것만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이날은 마침 최 회장이 어음관리 부실로 첫 부도를 맞은 1993년 11월 23일로부터 꼭 24년이 되는 날이었다. 최 회장은 “그때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었지만 참고 다시 일어났다. 준비를 잘한 덕분에 기업이 픽픽 쓰러졌던 외환위기 때는 오히려 큰돈을 벌었다”고 했다.


최 회장은 강연을 많이 하는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하다. 동대문시장에서 맨손으로 시작해 매출 1조 원대 기업을 일군 성장 스토리는 늘 주목을 받는다. 이날 강연이 더 특별했던 이유는 ‘아날로그 시대’를 대표하는 동대문 출신 CEO가 ‘디지털 시대’를 이끄는 정보기술(IT) 기업에 던진 메시지 때문이었다. 주제는 ‘기본’이었다.

최 회장은 1981년 친척이 인수한 서울 구 반포 지역 제과점을 운영했던 기억을 꺼냈다. 그는 “당시 식빵이 한 봉지 500원이었다. 이윤이 별로 안 남아도 기본부터 잘해야겠다 싶어 하루 세 번씩 식빵을 구워냈다”고 했다. 맛있는 식빵이 소문나니 그걸 사러 왔다가 다른 빵도 집어 드는 고객이 많았다는 거다. 길거리에서 팔던 ‘센베이(전병)’ 과자를 좋은 재료로 만들어 판 것도 주효했다. 최 회장은 “사업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배운 것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건 옷을 만드는 저나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해 나갈 여러분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만 19세에 사업을 시작해 벌써 45년 ‘경력’을 가진 최 회장에게도 고민이 없을 리 없다. 1990년대, 2000년대에 ‘성인 여성복’ 시장을 새로 개척해 큰 성공을 거뒀지만 최근 이어지는 해외 브랜드의 공습을 견디기가 쉽지는 않다. 최 회장은 강연 막바지에 “한창 장사가 잘될 때와 달리 요즘엔 직원들에게 화도 내고 자주 다그치고 있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고는 “문제는 내게 있었다. 그걸 직원들에게 풀다 보니 악순환이 된 거다. 그래서 다시 ‘마!’라는 코치의 호통을 떠올린다”며 환하게 웃었다.

성남=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최병오#패션그룹#형지#강연#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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