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의 세븐일레븐 무인 편의점에서 김성모 기자가 핸드 페이(손바닥 정맥 결제)로 간식을 사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김성모 기자‘카드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겠다.’
손바닥 정맥을 이용한 인증·결제를 해보고 든 생각이다. 지난달 25일 기자는 서명 대신 손바닥을 대 편의점에서 결제를 하고, 은행에서 돈을 뽑았다. 물건을 사는 데에 1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은행에서는 카드와 통장 없이 출금과 계좌 이체도 했다. 여러 금융 거래를 손바닥 하나로 편하게 끝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식의 정맥 인증·결제가 보편화되면 카드를 들고 다닐 일이 없겠다 싶었다.
이날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 최근 문을 연 세븐일레븐 무인 편의점을 찾았다. 롯데카드가 ‘핸드 페이(손바닥 정맥 결제)’ 시스템을 시범 도입한 곳이다. 이곳을 이용하려면 롯데카드 회원이어야 한다. 기자는 이를 위해 이틀 전 롯데카드를 만들었다. 자신 있게 카드를 내밀자 “신분증하고 손바닥만 있으면 된다”며 직원이 웃었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온 인증번호를 알려줬다. 생체 정보 이용에 동의하는 문서에도 서명했다. 이후 직원이 시키는 대로 스캐너 위에 오른 손바닥을 4번 올렸다가 뗐다. 롯데카드 김태연 홍보팀 과장은 “손바닥 정맥의 혈관 굵기나 선명도, 모양 등을 파악해 암호화하고 이를 카드 정보에 담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신분증을 주고 등록하는 데까지 총 3분 정도가 걸렸다.
KB국민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정맥 인증 화면.김성모 기자 mo@donga.com 이용은 더 쉬웠다. 편의점 입구에 있는 스캐너에 손을 대니 입구가 열렸다. 간식거리를 하나 골라 계산대에 올렸다. 컨베이어벨트가 자동으로 돌아갔다. 공항 보안검색대 같은 인식기기를 거쳐 구매한 상품이 나왔다. 모니터에 가격 1500원이 떴다. 모니터에 나온 대로 휴대전화 번호를 누르고 손바닥을 스캐너에 올렸다. 이렇게 결제가 끝났다.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이어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여의도영업부로 이동했다. 국민은행은 여기를 포함해 두 지점에 정맥 인증으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마련했다. 은행에서도 편의점과 마찬가지로 카드와 통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창구에서 신분증을 내고 신청서에 등록할 계좌와 개인 정보를 써 냈다. 그리고 스캐너에 손을 4번 가져다 댔더니 등록이 끝났다.
등록을 마치고 지점 내에 있는 정맥 인증 ATM으로 갔다. 다른 ATM과 모양이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비밀번호를 누르는 곳 상단의 스캐너가 눈에 띄었다. 예금 출금, 입금, 계좌 송금 등의 목록이 있는 첫 화면에서 ‘바이오 인증’을 눌렀다. 다음 화면인 거래 선택에서 예금 출금을 골랐다. 주민등록번호를 누르자 ‘바이오 인증 모듈 위에 손바닥을 올려주십시오’라는 문구가 떴다. 손바닥을 올리자 1∼2초 만에 금액 선택 화면으로 넘어갔다. 비밀번호를 누르자 거래 완료 창이 떴다.
다른 은행들도 생체 정보를 활용한 ATM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등장하면서 은행들이 생체 인증을 속속 도입해 ‘카드·통장 없는 시대’로 빠르게 접어들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30일 정맥 인증이 가능한 지점을 전국 51개 지점으로 확대했다.
최근 지문, 홍채, 목소리 등 다양한 생체 인증 방식이 쏟아지고 있다. 회사들이 정맥 인증에 주목하는 이유는 보안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타인으로 잘못 인식할 확률이 정맥은 0.00001%로 지문(0.01%)보다 훨씬 낮다”고 말했다. 이어 “정맥의 굵기나 기울기 등을 특정 문자로 변환해 여러 번 암호화한 뒤 반은 롯데카드에, 반은 금융결제원 바이오 정보 분산관리센터에 저장해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생체 인증 정보가 한 번 유출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생체 정보가 유출됐다고 비밀번호처럼 자신의 홍채나 손바닥을 바꿀 순 없기 때문이다. 생체 인증 횟수에 제한이 없다는 점도 고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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