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당국 수장인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통화당국 수장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경기 부양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것도 미국 워싱턴에서 8일(현지 시간)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서다. 유 부총리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기준금리가 1.25% 수준이라 아직 ‘룸(추가 인하 여력)’이 있다”고 밝혔다. 반면 이 총재는 기자단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한국은 재정건전성이 ‘톱 클래스’인 만큼 재정정책은 여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경제를 보는 관점이 다르면 각기 다른 해법을 제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각국의 재무부 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참석하는 국제행사장에서 경제정책의 엇박자를 노출시켜야 했는지 의문이다. 조만간 연 2.8%의 성장목표가 무리수였음이 드러날 것 같자 책임 소재라도 분명히 해두려는 의도인가. “IMF 총재도 한국 독일 등을 재정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하는 국가로 꼽았다”는 이 총재의 발언은 마치 ‘한은은 숙제를 다 했는데 정부가 문제’라는 비난처럼 들린다.
정부와 한은의 소모적 공방이 처음도 아니다. 4·13총선 전에도 산업 구조조정을 뒷전으로 미룬 채 국책은행에 재원을 충전하는 방법으로 다투다가 2개월 넘게 금쪽같은 시간을 날려 보낸 전력이 있다. 해운업 부실 구조조정으로 물류대란을 맞았음에도 정부와 한은이 경기부양의 책임 공방을 벌이는 것은 과거의 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얘기다.
두 경제 수장의 공방이 한가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경제 위기로 가라앉기 직전의 난파선 형국이다. 1257조 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는 경제의 뇌관이고, 부동산은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과도한 거품이 끼고 있다. 10월 이후 경제는 소비절벽에 빠질 가능성이 높고, 노동계 파업과 삼성 갤럭시 노트7 리콜 사태로 수출은 바람 앞의 등불 격이다. 정부는 혈세를 당겨쓰고 할인행사를 열어가며 소비를 늘리려 안간힘을 쓰지만 임시방편이거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이 거세다.
경제부총리가 한진해운 법정관리 결정 전 대통령과 독대 한 번 못했고, 부총리와 한은 총재 사이에 정기적인 대화도 없는 게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국내외에 산적한 불확실한 악재가 동시에 터진 뒤에야 재정 수장과 통화 수장이 뒤늦은 긴급 회동으로 사후약방문이라도 내놓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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